'귀태파문' 수습국면…홍익표 논평부터 사퇴까지

2013-07-13     이원환 기자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이른바 '귀태(鬼胎)' 논평이 12일 하루동안의 국회 마비사태 끝에 논평 작성자 본인의 대변인직 사퇴로 일단 수습국면에 들어서는 모습이다.

그간 강한 조직력을 과시해온 새누리당이 당력을 한 데 집중하며 전방위적인 공세에 나서자 민주당은 이를 국가정보원·진주의료원 국정조사와 2007년 남북정상회담 NLL(서해 북방한계선) 대화록 열람·공개 등 현안을 중단시키려는 '물 타기'로 규정하며 맞섰지만 결국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 같은 홍익표 의원의 원내대변인직 사퇴가 곧바로 국회 일정 재개 등 정상국면으로 돌입할 계기가 될 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전망이다.

◇귀태 발언, 도대체 뭐기에?

홍 전 원내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지난해 발간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라는 책을 인용하며 "그 책의 표현 중에 하나가 귀태라는 표현이 있다. 귀신 귀(鬼)자에 태아 태(胎)자를 써서 그 뜻은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에 세운 괴뢰국에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라며 "아베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잘 아시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라고 책 내용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최근 이 두 분의 행보가 남달리 유사한 면이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있고 박 대통령은 5·16이 쿠데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시고 박정희 시절의 인권탄압과 중앙정보부 등 정보기관이 자행했던 정치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평소 당 안팎에서 '신사적'이란 평을 들었던 홍 전 원내대변인의 이 논평은 국가기관들의 잇따른 공세에 대응하는 차원의 발언이었다.

전날 국가정보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발언을 NLL 포기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데다 같은 날 국방부 대변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당시 발언에 "NLL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논평을 해 민주당을 자극, 홍 전 원내대변인의 논평이 나오게 된 것이다.

◇공격지점 탐지한 새누리 맹공 나서

당초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홍 전 원내대변인의 이 논평을 일상적인 정부여당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지만 이튿날인 12일 오전 청와대가 민주당에 대한 공세에 나서면서 귀태 발언 사태는 새 국면을 맞았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어제 민주당의 홍익표 원내대변인 발언은 국회의원 개인의 자질을 의심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국민을 대신하는 국회의원이 했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폭언이고 망언이었다"며 "국민과 대통령께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입장을 감지한 새누리당은 즉각 적극적인 공세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오전 9시7분께 문자메시지를 통해 취재진에게 NLL대화록 열람위원 상견례를 위한 국회 운영위원회 취소를 통보했다. 이어 강은희 원내대변인은 "지금부터 국회의 모든 상임위와 관련된 활동을 전면 중단할 수 있다"며 국회 일정 전면 중단을 예고했다.

오전 10시부터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에서도 새누리당 지도부는 홍 전 원내대변인의 발언 취소 및 원내대변인직 사퇴, 김한길 대표의 사과 등을 요구하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향후 남은 국정조사를 실시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홍 원내대변인의 진정한 사과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사과 ▲홍 원내대변인의 대변인직 사퇴 등 사후조치 등을 제시하며 민주당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조건은 국정원 국정조사와 공공의료 국정조사, NLL대화록 열람 등을 모두 귀태 발언 파문과 연계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나아가 김진태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 21명은 홍 전 원내대변인을 상대로 징계안을 제출,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기까지 했다.

◇촉각 곤두세우던 민주, 결국 홍 전 원내대변인 사퇴하고 김 대표 '유감' 표명

새누리당의 예상 밖 강공 이후 내부 회의를 거친 민주당 지도부는 오전 11시40분께 "국회 파행의 핑계를 찾기 위한 꼬투리잡기"라면서 응사를 시작했다. 홍 전 원내대변인이 이미 유감을 표명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국회 일정을 보이콧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었다.

민주당 내에서는 새누리당이 홍 원내대변인의 발언을 NLL대화록 예비열람건과 연결시키려고 다소 무리한 시도를 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 인사는 "새누리당이 (홍 원내대변인의 발언을)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식으로 활용해 드러누운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국면마다 설화에 휘말려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일이 반복된다며 한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 같은 여론에 압박을 느낀 홍 전 원내대변인은 자신의 발언이 새누리당에 의해 국회 파행의 빌미로 활용된 것에 책임을 느낀다는 점을 밝히고 당 지도부에 수차례 사의를 표명했다.

당초 당 지도부는 새누리당의 공세와 사퇴 요구가 지나치다고 판단해 사퇴를 승인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이 해당 발언을 이유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과 공공의료 국정조사 등 모든 국회 일정을 중단하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홍 전 원내대변인직의 사퇴를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가 승인하자 홍 전 원내대변인은 오후 7시37분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브리핑 과정에서 있었던 일부 부적절한 발언에 사과 말씀을 드린다. 책임감을 느끼고 원내대변인직을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홍 의원은 국회를 떠나며 취재진에게 "(귀태 논평으로)여러가지 면에서 국회가 잘 운영되지 않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한길 대표도 홍 의원 사퇴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김관영 수석대변인을 통해 "우리 당 공보담당 원내부대표의 어제 발언은 보다 신중했어야한다는 점에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정원 국정조사 등 모든 국회 일정이 정상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가 정상궤도로 복귀하기 위해선 국회 파행사태를 연장해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당 지도부로 하여금 홍 전 원내대변인의 사표를 수리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말과 휴일을 지나도 홍 의원 귀태 발언의 파장이 사그라지지 않을 경우 김한길 대표는 오는 15일 오전 최고위원회 공개발언을 통해 재차 사과하는 방안도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공은 새누리당으로 넘어가게 됐다. 예상보다 일찍 민주당이 홍 의원의 사퇴를 결정함으로써 새누리당으로선 국회 복귀 여부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홍 의원의 사퇴 기자회견 소식을 접한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당의 입장이다. 내일 긴급 지도부 회의를 열어 진정성 여부 등을 의원들과 얘기해보겠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새누리당 내 일부 의원들은 김한길 대표의 육성 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어 주말과 휴일 사이에 국회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예단하긴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