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밖 乙의 역습…민주당의 대처법은?
을(乙)을 위한 정당을 표방하며 을을 위한 경제민주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민주당이 복병을 만났다. 한국사회의 '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중소기업과 청년들이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입법에 반대하는 등 심상찮은 반발 기류를 형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민주당에게는 당혹스런 상황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당초 민주당 김한길 대표 체제는 '을'을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규정하고 사회 전 영역의 약자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내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을' 세력 내부의 미세한 균열들이 민주당의 갑을관계 프레임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으로 떠오른 셈이다.
실제로 중소기업단체는 지난 7일 민주당 원내대표실을 직접 찾아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 송재희 상근부회장은 중앙회 임원단과 함께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를 만나 "중소기업계가 요구하는 경제민주화와 노동·환경단체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를 구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어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였는데 경제민주화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일반 사회적인 문제까지 경제민주화의 울타리에 넣으면서 혼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두 문제에)구분해서 접근해야 시장에 혼돈이 없을 것이다. 중심을 잃지 않고 우리들이 요구하는 것까지 감안해야 한다"며 "노동과 환경 문제에는 신중하게 접근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회동에 나선 이은정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은 경제민주화 정책이 중소기업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 경고했다.
그는 "지난해 법원 판결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이제 상여금을 주고 싶어도 못 주게 됐다"며 통상임금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통상임금 판례에 따르면)퇴직금을 위해 기업이 14조원을 추가부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되면 좋을 거라고 하지만 큰 그림에서는 중소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 (민주당이)깊이 생각해서 대책을 내 달라"고 촉구했다.
이 회장은 휴일근무를 추가근무로 산입하는 방안에도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중소기업의 경우 주말과 휴일에도 근무가 불가피한데 주말근무를 초과근로에 산입하면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진다"며 "(중소기업이 부담 탓에)휴일근무를 안 하게 되면 되레 근로자 급여는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민주당은 중소기업 달래기에 나섰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중소기업은 경영자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갑의 입장임이 이 자리에서 확인됐다"고 말해 웃음을 이끌어낸 뒤 "을을 지키겠다는 것은 반칙과 편법, 불법을 솎아내 건강한 갑을 관계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이어 "을을 지키자는 것이지 갑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갑이 있어야 을이 있다"며 "건강한 갑이 있어야 지속가능하다. 어느 한편의 소멸시키자는 취지는 아니다. 수탈적인 구조가 정상화돼야 을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노동 임금 태스크포스 간사인 은수미 의원은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관련 지적에 대해 "통상임금이나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다루겠지만 일방적으로 (갑에게 의무를)지게 하는 게 아니라 정부를 통해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동시에 입법 추진하겠다. 속도를 조절하고 맞춰나가겠다"고 말했다.
김기준 의원도 "노동 문제와 중소기업과 대기업 문제는 공정거래와 소득분배 등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다뤄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경제민주화는 경제 살리기다. 돈을 돌리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조정식 의원도 "입법과 제도 개선 때 의욕이 앞서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에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도 있는 듯하다. 민주당이 꼼꼼히 헤아리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중소기업이 대립각을 세우자 민주당은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이다. 갑을상생론에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까지 장착한 새누리당에 이어 우군으로 여겼던 중소기업까지 경제민주화 입법에 의문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보수성향 청년단체들까지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입법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민주당의 시름은 한층 더 깊어질 전망이다.
한국대학생포럼, 미래를여는청년포럼, 바른사회대학생연합, 바이트 등 보수 청년단체는 지난 7일 공개한 성명서에서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처리되면 당장 5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며 "정년연장, 청년고용3%의무화 등도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을 부추기거나 30세 이상 미취업 청년층을 소외시킬 우려가 커 새로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런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면 되레 청년들의 취업을 방해하게 될 것"이라며 "청년 일자리를 위협하는 허울뿐인 경제민주화 정책을 규탄하고 청년들의 신규채용 위협하는 정년연장법의 재검토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저성장이 고용을 악화시키는 점에 주목해 경제성장을 발목 잡는 무조건적인 기업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전달하겠다"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면담을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예상치 못했던 위험요소에 직면한 민주당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요구를 수렴해 각계의 반발을 줄일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을 제시, 위기 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