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100]지하경제 양성화…"조세정의 구현 VS 지상경제 위축" 팽팽

2013-06-03     이원환기자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지하경제 양성화'에 탄력이 붙는 조짐이다. 그러나 실상은 '조세정의 구현'과 '지상경제 위축'이란 명제에 부딪혀 삐걱댄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서슬 퍼런 칼을 꺼내든 사정당국의 의지에 재계의 '경영활동 위축'이란 항변은 효력을 잃은 지 오래다.

조세정의를 확립한다는 목표도 사정당국의 전방위적 의혹 조사로 불안감만 키우는 형국이다.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반(反)기업 정서만 확산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 등 직접적인 증세 없이 비과세·감면 축소와 함께 지하경제 양성화로 50조원대의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되, 중소기업과 서민경제 부문으로 파급되지 않도록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음지의 경제를 양지로 끌어올리려다 되려 지하경제를 부풀리고 지상경제 마저 악화시킬 수 있어서다. 정부가 계획한 목표 세수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지하경제 정의부터 규정해야…부작용 발생 가능성 커

무엇보다도 지하경제 정의가 모호하다.

지하경제는 밀수·마약·도박·사채 등 범법 행위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에서부터 넓게는 현금으로만 거래하고 소득을 신고하지 않는 탈세나 조세 회피, 법적근거가 마련되지 않거나 과세 대상에서 벗어난 경제활동까지 아우른다. 그 규모를 놓고 추정기관이나 연구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다.

음지의 경제인 탓에 정확한 집계가 어렵지만, 대략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가 약 25%로 파악된다. 10~15% 내외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지난 3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지하경제 규모를 파악했냐는 질문에 "GDP의 2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보고 있다"면서 "업종·분야별로 규모를 파악한 뒤 그 규모에 따라 조사비율을 높여나가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부는 5년간 늘려야 할 세입 50조7000억원 중 절반이 넘는 27조2000억원을 지하경제 양성화로 메우겠다는 복안이다.

국세청은 이미 ▲대기업·대재산가의 비자금, 불공정거래, 편법 상속·증여 ▲고소득자영업자의 차명계좌·현금거래 탈세, 가공비용 계상 ▲불법사채업과 주가조작, 가짜석유 등 민생침해 사범 ▲해외소득 은닉과 국내재산의 국외유출 등 역외탈세자 등 4개 분야에 대한 추적조사에 나선 상태다. 여기에 금융당국까지 동원돼 기업의 자금흐름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태세다.

문제는 정부가 선의를 갖고 추진한 정책이 편익보다는 더 큰 부작용을 양산해내고 있다는 데 있다.

역외탈세와의 전면전이 대표적이다. 역외탈세 혐의 기업에 대한 사정당국의 대대적 조사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번지고 있다.

비영리 독립언론인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서류상 존재하는 유령회사) 설립자 명단 공개로 불붙은 역외탈세 의혹은 말 그대로 개연성이 짐작될 뿐이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거나 자산을 이전했다고 다 탈세나 범법 행위로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또 국제공조 없이는 역외탈세를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점도 한계다.

게다가 지하경제 양성화 과정에서 서민층과 중소기업이 피해볼 수도 있다. 대기업과 대자산가의 세무조사 강화가 이들과 거래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조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서다.

김 청장도 지난 4월 국회 기획재정위의 국세청 업무보고에 출석해 "세무조사 강화가 기업의 정상적 운영을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소액생계형 서민경제와 중소기업은 제외하고, 공정거래 저해 분야로 (조사)대상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대기업이 국제거래에서 가격을 탄력적으로 통제할 수가 없다. 비용(Cost)을 다운(down)시키려고 협력사에 전가할 확률이 높다"면서 "직접적 과세 추징이 되지 않아 (대기업의 세무조사 강화가 영향이)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 중소기업의 경영 위축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정책의 완급 조절 필요…27조 조달 실현 '글쎄'

전문가들은 지하경제 양성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경제에 충격을 가할 만큼 무차별적인 세무조사가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조언한다.

최경수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특임교수는 "조세정의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면서도 "대기업 투자 위축과 영세사업자·중소기업의 불안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세원 양성화를 위해 과세인프라 구축과 국민들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카드 세액공제율 상향 등과 같은 제도적 기반 마련이 지하경제 축소에 도움이 된다"며 "국민들도 세원 양성화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부작용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홍 교수는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현 상황에서 드라이브를 건다면 심리적 위축뿐 아니라 지상경제 활성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줘 정부의 세수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면서 "지하경제 양성화는 지상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완급을 조절해 가면서 점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하경제 양성화로 연간 6조원의 세수를 끌어오겠다는 계획이 비현실적이라고 봤다. 그는 "지하경제 이슈가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성과는 시원찮다. 향후 세수 확보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단순히 재정수요 확보의 방편이 아닌, 과세형평성을 높여 사회통합을 도모하는 조세정의 확립 차원에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