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찌르자 공산당, 6월 호국안보 여행지 톱3

2013-06-02     김지원기자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연중 11개월 동안 즐겁고 신나는 곳을 찾아 떠난다 해도, 이달만큼은 진지하게 호국안보 여행을 해보면 어떨는지…. 한국관광공사의 추천을 받았다.

◇전쟁의 상처 위에 피어난 청정한 자연, 양구 펀치볼과 두타연

가칠봉·대우산·도솔산·대암산 등 해발 1100m가 넘는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 ‘화채 그릇’과 닮았다고 해서 명명된 양구의 ‘펀치볼’. ‘행복한 가정’을 상징하는 듯한 원뜻과 달리 6·25동란 당시 펀치볼에서는 동족상잔의 격전이 벌어졌다. 고지의 주인이 매일 바뀌던 그곳에서 수많은 젊은 피가 북괴의 마수에 맞서 조국과 겨레를 지키기 위해 뿌려졌다. 북녘이 손에 잡힐 듯한 을지전망대, 1990년 발견된 총길이 2㎞ 남짓한 제4땅굴, 도솔산 전투, 펀치볼 전투, 피의 능선 전투 등 전쟁 당시 양구에서 벌어진 9개 전투를 재조명한 양구 전쟁기념관은 펀치볼의 3대 안보 관광지다. 을지전망대와 제4땅굴을 보려면 양구전쟁기념관 앞 양구통일관에서 출입 신청을 해야 한다. 당일 신청하면 되고, 오후 4시까지 가능하다.

가슴이 먹먹해졌다면 총길이 51㎞인 ‘소지섭 길’을 조금이라도 걸어보자. 수십년 동안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으로 있다가 2004년 비로소 출입이 허용된 두타연 구간은 자연을 만끽하며 마음을 풀기에 최적이다. 한류스타 소지섭(36)은 SBS TV 드라마 ‘카인과 아벨’(2009)을 양구에서 촬영한 것을 계기로 양구의 DMZ를 배경으로 사진 에세이집 ‘소지섭의 길’을 출판하는 등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두타연 갤러리에 그의 사진과 의상, 손모양 조형물 등이 전시돼 있다. 두타연 트레킹을 즐기려면 평일에는 하루 전, 주말에는 금요일 오후 1시 전에 양구군 문화관광 홈페이지(www.ygtour.kr)로 출입 신청을 해야 한다.

이 밖에 이 지역 출신인 화가 박수근(1914~1965)을 기리는 박수근 미술관, 이 지역에서 태어난 수녀 겸 시인과 평남 출신이지만 이 지역에 터를 잡은 두 철학자를 조명하는 ‘이해인 시문학의 공간’,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 한반도의 동서남북 각 끝 점이 교차하는 국토 정중앙에 있음을 상징하는 국토 정중앙 천문대, 천연기념물 제217호 산양을 되살리는 양구 산양증식복원센터, 물놀이 명소인 광치 계곡 등도 빠뜨릴 수 없는 명소다. 033-480-2251

◇분단의 현장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다, 연천 안보 관광

우리나라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고, ‘정전 상태’라는 엄연한 사실이 현재 진행형임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면 연천으로 가자.

먼저 찾을 곳은 승전 OP(Observation Post; 관측 초소)다. 강원 철원이나 고성 지역에 설치된 여행객을 위한 전망대와 달리 승전 OP는 육군 25사단이 북괴군의 활동을 관측하기 위해 운용하는 실제 최전방 관측소다. 승전OP 앞으로 남방 한계선 철책이 길게 늘어섰고, 2㎞ 위에 휴전선이라 부르는 군사분계선이 있다. 군사분계선 앞에는 태극기와 유엔기가 꽂힌 GP(Guard Post; 휴전선 감시 초소)가 있고, 다시 북쪽으로 2㎞ 지점에 북방 한계선이 있다.

망원경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지만, 승전OP와 북괴군 관측소간 거리가 750m에 불과해 북한 땅을 보다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북한 땅도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과 다르지 않다. 그대로 이어진 땅, 그대로 펼쳐진 하늘이다. 그러나 그곳은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고, 그곳에 있는 그들에게 한 치의 땅도 하늘도 함부로 양보할 수도 없고 양보해서는 안 된다. 승전OP 내 전망대에 마련된 지역 모형도를 보며 담당 군인의 설명을 듣고 나면 분단과 통일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진다.

그 다음은 1·21 무장공비 침투로다. 1968년 1월17일 오후 11시 북괴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군 소속 김신조를 포함한 무장 공비 31명이 남방 한계선을 넘어 침투했다. 이들은 국군 복장에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4일 뒤인 1월21일 서울에 잠입, 청와대와 주요 기관을 폭파하고 박정희(1917~1979) 대통령 등 요인을 암살하고자 했다. 다행히 사전에 발각돼 궤멸되면서 한국은 위기에서 한 걸음 비켜갈 수 있었다. 이곳에는 무장 공비 31명이 경계 철책을 뚫고 침투하는 모형물이 전시돼 그날의 위험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인근에 경순왕(?~978)릉이 있다. 고려에 나라를 송두리째 바친 신라의 제56대 왕이 선대 왕들과 달리 고향인 경주가 아닌 낯선 곳에 홀로 유택을 지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은 새삼 ‘망국의 한’을 깨닫게 한다. 고구려의 산성인 호로고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시대 유적인 연천 전곡리 유적 등도 놓쳐서는 안될 여행지다. 031-839-2061

◇평화와 전쟁, 사랑과 아픔이 공존하는 ‘서해의 보석’ 백령도

백령도는 우리 땅의 서쪽 끝이자 북쪽 끝이다. 중국 산둥반도와 190여㎞, 북한 땅인 황해도 장연군과는 10㎞ 거리다. 백령도와 인천을 오가는 뱃길이 200㎞ 남짓이니 서울보다 북한이나 중국과 가까운 셈이다.

이런 지리적 상황은 백령도를 지금의 군사적 요충지로 만들었으며, 6·25 당시에는 이 섬을 차지하기 위해 한국군과 유엔군, 북괴군과 중공군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장연군 반공 유격대 출신 동키부대(백호부대)의 활약 덕에 백령도에서는 지금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고, 국군은 북한의 턱밑까지 북방한계선(NLL)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백령면 진촌리에는 동키 부대원들이 사용하던 작은 우물과 막사가 남아 있다. 특히 장연군이 바라보이는 마을 언덕에는 유격군 백호부대 전적비가 세워져 그들의 희생을 기린다.

백령도는 군사 관련 유적이 많은 곳이지만,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평화와 사랑의 상징인 종교의 씨앗이 뿌리내린 곳이기도 하다. 200여년 전인 1832년 최초의 내한 개신교 선교사인 네덜란드 출신 카를 귀츨라프가 백령도를 찾았고, 1898년에는 개화파 정치가 허득에 의해 중화동 교회가 세워졌다. 개신교 뿐 아니다. 천주교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백령도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1821~1846) 신부가 1846년 백령도를 통한 선교사 입국 루트를 개척하던 중 관군에게 붙잡혔고,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하지만 그가 개척한 루트를 통해 프랑스 선교사 17명이 입국했다. 백령면 진촌리 백령성당에는 김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안치돼 있다.

중화동 교회 입구 계단 옆에는 높이 6.3m에 달하는 국내 최대 무궁화가 서 있다 ‘옹진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라 명명된 수령 100년 남짓한 무궁화로 천연기념물 521호다. 적진 바로 앞 우리나라 꽃 무궁화이고, 수령까지 그 정도라니 백령도가 한국 땅인 것은 100년 전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던 듯하다.

이 밖에 ‘신들의 조각품’으로 일컬어지는 두무진, 눈 먼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300석에 인당수(황해도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 바다)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의 전설을 기념하는 심청각,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세계에서 두 군데 뿐인 해변 천연 비행장인 사곶 사빈(천연기념물 391호), 동글동글한 자갈로 가득한 남포리 콩돌해변(천연기념물 제392호), 용기포 옛 선착장에서 이어지는 용기포 등대와 등대해변, 고봉포구의 사자바위와 창촌포구의 용트림 바위도 찾을 만하다. 용기원산 전망대에 올라 백령도를 조망해보는 것도 꼭 해볼 일이다.옹진군청 관광문화과 032-899-2210, 백령면 민원실 032-836-3000 

       인천 옹진 백령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