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100일] '순환출자 금지'... "사익 편취 막아야" VS "투자 위축시킬 것" 팽팽

2013-05-30     이원환기자

"대기업들을 다 고사시킬 셈인가."(재계 관계자)
"신규 순환출자 금지는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최근 뜨거운 감자다. 6월 임시 국회에서 논의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재계가 마음을 졸이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정부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도 굳건하다.

정부는 2001년 회사법 개정을 통해 순환출자를 금지한 이후 수차례 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강화해왔다. 경제민주화라는 대의명분을 내건 이번 정부도 기업 규제 강화에 나섰다. 신규 순환출자를 제한하는 법안은 6월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미 한진, 한솔 등은 올해 들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고 밝혔다. 새 정부 출범 초 경제 민주화 바람에 동승했다.

'순환출자'
한국 기업문화에서 수많은 논란을 극복한 채 흔들림 없이 이어온 '뿌리깊은 나무'다.

그동안에는 그룹 총수 등 지배주주의 독단적 경영을 가능케하는 '비밀의 키'로 읽혀졌다. 지배주주가 큰 돈 쓰지 않고도 그룹을 지배할 수 있어 총수 일가를 제외한 외부 투자자의 이익을 갈취하는 핵심고리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 인식이다. 특히 일부 대기업은 자녀에게 재산을 승계할 목적으로 순환출자를 활용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기존의 순환출자는 인정하지만 새로 형성되는 순환출자만큼은 금지시키겠다"고 못을 박는 것도 경제민주화라는 새 정부의 정치 철학에 비추어 봤을 때 이 같은 사회적 비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계는 정부의 이같은 시선에 대해 "순환출자를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일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순환출자의 긍정적인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 

 
재계 한 관계자는 "해외 선진국에서는 순환출자를 단순 기업결합의 문제로 보고 있다"며 "우리만 유독 순환출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전 기업이 대상이 아니라 경쟁제한효과가 있는 기업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규제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게다가 자본시장이 개방된 현 상황에서 순환출자는 적은 비용으로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방어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재계가 우려하는 포인트는 투자위축. 한 관계자는 "경기도 어려운 마당에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라고 요구하면서 기업을 옥죄면 어느 기업이 신규 투자를 마음 놓고 하겠냐"고 토로했다.

더 큰 우려는 앞으로의 행로에 대한 위기감이다.

당장은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지만 향후 순환출자 금지가 전면화된다면 기업 지배구조 전반에 커다란 변혁을 불러온다.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마다 천문학적인 경영지분 확보비용을 투입할 수 밖에 없는 것.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순환출자를 금지하겠다는 얘기는 정부가 대기업들의 기업 지배구조를 강제로 바꾸겠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순환출자에 대한 기업의 논리는 항상 '투자위축'과 '과잉 비용유발'이지만 이에 대한 반대 논리도 엄연하다.

경제개혁연구소 관계자는 "순환출자는 이미 위법"이라며 "신규 순환출자 금지 때문에 투자를 못하겠다는 건 근거가 미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순환출자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면이 많다"며 "경제력을 집중시켜 실질적인 경쟁을 제한하고 내부 계열사간 부당 거래를 발생시키는 등 한국 사회에 많은 부작용의 원인이 되고 있어 해소되는 방향으로 가는 편이 맞다"고 주장했다.

한편 경제개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대규모기업집단 중 순환출자 기업은 모두 15개. 모 두 87개의 계열사를 통해 100개의 순환출자가 형성돼 있다. 이들 그룹이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매각해야할 총 지분가치는 약 9조 6000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