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위협 속 예비군 훈련 가보니 "전쟁은 무슨…"
"북한의 위협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별 관심 없어요. 예비군 훈련이야 적당히 시간만 보내면 되죠."
다소 쌀쌀한 바람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던 지난 8일 오전 8시 수도권 한 예비군 훈련장. 훈련을 받기 위해 전투복을 갖춰 입은 예비군들이 속속 도착했다.
최근 핵실험에 이어 개성공단 잠정 폐쇄 선언 등 북한의 위협 수위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반면 예비군 훈련장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훈련시간이 가까워지자 전투복을 제대로 입지 않은 예비군들과 조교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선배님들, 훈련 과정마다 교관이 평가해 성적이 우수한 분들은 조기 퇴소합니다."
검은색 베레모를 쓴 교관이 목청껏 소리를 높여 조기퇴소제도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이를 귀담아 듣는 예비군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삼삼오오모여 지인들과 웃고 떠드는데 열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전 9시 본격적인 훈련시간이 됐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예비군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안보교육관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조교들이 실제 총알이 잘 발사될까 싶을 정도로 낡은 총을 한 자루씩 나눠줬다.
실제로 기자의 카빈 소총은 흙으로 총구가 막혀있었다. 다른 예비군들이 지급받은 소총은 노리쇠의 왕복운동이 원활치 않거나 개머리판이 깨져있는 등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예비군들은 지급받은 총과 낡은 장구류가 신기한 듯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한참을 살펴봤다.
"이 총은 임진왜란 때 사용한 건가?"
"와! 수통에서 노르망디 해변의 향기가 나네."
한 예비군이 농담을 던지자 안보교육관은 금세 웃음바다가 됐다. 낡은 소총에 대한 관심도 잠시뿐. 일부 예비군들의 관심은 손에 쥔 스마트폰에 집중됐다.
이어진 외부 초청 인사의 안보교육 시간.
"최근 북한의 위협·도발이 날로 거세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안보교육에 사용되는 국방부 자료에는 최신 내용이 없어요. 어쩔 수 없지만 최신 내용은 신문을 참고하세요."
교육이 시작되자 예비군들을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을 청했다. 안보교육관 안에는 낡은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강사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강단 앞에 붉은색으로 적힌 '안보 불감증'이라는 단어를 실감케 했다.
오후에는 수색·정찰 훈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야외훈련이 시작됐다. 지뢰제거와 각개전투 등 각 훈련장마다 배치된 조교들은 예비군들을 인솔하는데 진땀을 빼야했다. 이동할 때마다 뒤쳐지는 예비군들을 독려하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동하느라 힘을 다 소진한 탓일까. 막상 훈련장에 도착했지만 훈련을 받는 것보다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 듯 훈련장 한편에 마련된 흡연 장소는 연신 뿜어내는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선배님들, 지난 밤 좋지 않은 꿈을 꾸셨거나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면 굳이 사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교의 말에 곳곳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고, 예비군들의 얄궂은 추궁이 이어졌다. "총알이 부족한 거 아니냐", "우리 모두 사격 안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질문을 쏟아내자 조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위에서…"라며 말 꼬리를 흐렸다.
결국 한 조로 편성된 예비군 40명 중 20여명만이 사격을 실시했다.
"오늘 입소한 예비군이 예상보다 100여명이 더 왔어요. 300여명으로 예상했는데 400여명이나 입소했거든요."
예상 밖의 인원이 입소한 탓(?)에 이어진 검문·검색과 구급법, 화생방 등 훈련들은 대부분 느슨하게 진행됐다.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한 일부 예비군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먼 산만 바라보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5시께 예정된 훈련이 끝나자 예비군들은 안보교육관에 재빠르게 집합해 집에 갈 채비를 마쳤다. 평소 어슬렁거리던 예비군들도 이때만큼은 현역병 못지않게 재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소총과 장구류를 반납하고 교통비 4000원을 받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예비군들은 앞 다퉈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집까지 앉아서 가기 위한 셔틀버스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대통령이 와도 예비군을 통솔하기 불가능할 것"이라는 한 조교의 푸념 섞인 농담이 위급할 때 나라를 지키려고 일손을 잠시 놓고 군사훈련 받는 예비군들의 퇴소를 종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