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설립 러시… '룰루랄라' 예술조합 출범 지켜봤더니…

서울시 허가 일사천리… "왜곡된 미술시장에 청량제" 포부

2013-03-24     송준길기자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협동조합' 광고를 한번쯤은 접했을 것이다.

바쁜 일상에 쫓기느라 지나쳤을 이 광고를 한번쯤 짬을 내 찬찬히 살펴보자. 문득 자신의 내면에서 창업에 대한 호기심이 슬쩍 치미는 것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2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래 이달까지 새로 생겨난 협동조합은 500여개.

서울시에서만 200여개가 넘는 각종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13일 '협동조합활성화 기본계획'을 직접 발표해 협동조합 설립을 위한 기반조성에 나서는 등 지자체도 협동조합 설립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대규모 재개발에 따른 마을공동체 약화, 1인 가구 확대 등으로 다양한 영역의 복지, 사회서비스 수요가 증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일자리, 복지의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협동조합 설립 러시의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뭉치면 죽는다는 그들이 왜?

기자가 평소 가깝게 지내던 미술인으로부터 룰루랄라 예술 협동조합 설립에 관한 풍문을 들은 것은 지난 연말이다.

통상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예술인들이 자신의 개성을 잠시 뒤로 미뤄둔 채 하나로 뭉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영리를 추구하다 결국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엇걸려 패가망신한 예술 단체가 어디 한두 군데인가.

하지만 5명만 모이면 출자금 규모에 상관이 누구나 법인을 만들 수 있고, 조합원 하나하나가 조합의 주인이 되는 민주적 운영구조가 장점인 협동조합은 기존 예술 단체가 갖고 있는 난맥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됐다.

무엇보다 일반 기업과 달리 개인적 영리보다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토록 한 협동조합의 운영방식에 예술인들은 환호했다. 정년이 없고, 분배가 균일하며,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는 점은 매력으로 다가왔다.

◇왜곡된 예술시장에서 '룰루랄라~'

미술인들이 주축이 된 룰루랄라가 설립된 것은 기존 미술시장이 왜곡될 대로 왜곡된 상황과 무관치 않다.

대형 화랑을 중심으로 생산과 유통, 소비가 진행되는 현 상황은 작가들을 주체가 아닌 철저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유통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화랑측이 이런저런 명분으로 작가에게 분배되는 몫을 가로채면 작가는 자신의 몫을 늘리기 위해 작품의 단가를 실제보다 부풀려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대형 갤러리 사태에서 보여지듯이 화랑가는 대기업의 은밀한 거래를 위한 검은 통로로 치부되기도 한다.

'룰루랄라'라는 조합이름은 이 같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 예술인들이 미술시장의 주체로 자리 잡게 해 즐겁게 일하도록 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졌다.

◇30대부터 60대까지 면면 다양

룰루랄라 협동조합은 10명이 발기인으로 구성됐다.

신학철, 이철수 등 민중미술의 뿌리 같은 50~60대 작가들이 조합의 중심을 잡는다면, 김기호 이철재 등 중견작가들이 무게감을 더했다.

현장과 밀착된 작업으로 이른바 '파견미술가'로 불리는 이윤엽, 배인석, 전미영 등 68년생 작가들은 특유의 활동성으로 조합의 저변을 넓히고, 나규환 이윤정 등 30대 작가들은 조합의 미래를 기약케 하는 담보인 셈이다.

작가들이 개별적 활동을 통해 작품을 생산하면 예술인 스스로 꾸민 조합 운영진이 최소한의 유지비 등을 제외한 비용의 전부를 조합원에 돌려준다. 기존 화랑이 작가와 작품판매에 대한 이익분배를 5대 5로 했다면 협동조합은 3대 7로 작가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신고부터 등기까지 '일사천리'

협동조합 신고서부터 등기까지의 절차는 기존 사업자 신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간단 명료했다.

지난 2월15일 정관, 사업계획서, 세부사업별 운영계획 등을 만들어 서울시 관계기관에 신고를 하자 이달 5일 시로부터 신고필증이 나왔다.

지난 22일 최종적으로 등기를 마치고 공식적으로 룰루랄라 협동조합은 출범했다. 2달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법인이 만들어진 셈이다.

◇"약자들이 모여 자생할 길 만들 터"

협동조합의 앞날에 대해 구성원들은 어떻게 말할까.

조합원 만장일치로 이사장 자리에 오른 미술가 전미영(46·여) 씨는 "작가는 항상 하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시작과 동시에 모든 게 처음 있는 일이 될 것이고, 처음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매번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상임이사를 맡게 된 조각가 나규환(34) 씨는 "생산자들이 주인이 되어서 협동조합을 만들게 됐다"며 "약자들이 모여서 자생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의 삶이 존중되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와 기획으로 작가 개인의 개성이 유지되고 세상과 소통가능한 환경 만들기를 시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사를 맡은 화가 배인석(45) 씨는 조합의 활동방향에 대해 "전쟁을 반대한다, 가능한 안 되는 일은 지양한다,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러 갈 수 있다, 대통령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익살맞게 말했다.

역시 이사가 된 이윤정(34·여)씨는 "재미없어 질까봐 겁도 좀 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룰루랄라 협동조합은 앞으로 온·오프라인 전시공간과 미술은행 운영을 주요 사업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임원진이 직접 나서는 각종 사업은 미술시장에서 횡행하는 이른바 하도급을 지양한다.

여타 협동조합과의 연대사업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에도 나서게 된다. 조만간 조합원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정보를 전달하는 온라인 소식지 등을 발행할 예정이다.

◇'꿈을 그려내는 공간 될까'

룰루랄라 협동조합 설립을 자축하기 위해 지난 22일 저녁 마포구 서교동 공간 '룰루랄라'에 모인 조합원과 예비조합원들은 회의를 마친 뒤 자신의 세속적인 꿈을 그려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딱 하루 서예를 배웠다는 이윤엽씨가 조합원들의 소망을 붓글씨로 수첩에 적었다. 작가들은 돈을 주문했다. 젊은 작가는 외제차 람보르기니와 포르쉐를 주문했다. 한 조합원은 "기름살 돈도 없으면서"라며 '기름만땅'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