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도전 '7번방의 선물', 태풍 볼라벤 덕?
지난달 14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류승룡(43)의 휴먼 코미디 영화 ‘7번방의 선물’이 시사회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어느 영화평론가가 “크리스마스 때 별로 좋은 영화 없었다. 이 영화가 정말 대박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고집해 완결시키지 못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러자 이환경(43) 감독은 “크리스마스 때로 개봉 시즌을 맞췄는데 못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하늘의 잘못이었다. 태풍 볼라벤 때문에 세트가 두 번 무너지면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면서 “한 달 보름이 미뤄진 채 촬영이 끝난 뒤 후반작업을 굉장히 급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투자사, 홍보사, 제작사가 오히려 개봉을 늦추더라도 퀄리티를 높이기로 결정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좀 더 따뜻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는데 아쉽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관객들을 찾아갈 수 있어서 기쁘다”며 눈물을 글썽이면서 답했다.
개봉한 것만 해도 기적이라던 이 영화가 이제 꿈의 10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코미디물로서는 최초다.
이 영화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지만 개봉 시기도 빼놓을 수 없다. 개봉 시기는 이 감독의 말처럼 하늘이 점지해줬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시기가 썩 좋지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극장가 비수기인 1월 중순이었고, 이미 2주 앞서 개봉한 같은 코미디 장르인 박신양(45)의 ‘박수건달’(감독 조진규)이 22일까지 278만명을 모을 정도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로 한 주 뒤인 31일에는 올해 기대작 중 하나인 하정우(35) 한석규(49) 류승범(33) 전지현(31)의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 ‘베를린’(감독 류승완)의 개봉이 예정돼 있었다. 특히 ‘베를린’은 스타 배우들 만으로도 모자라 스타 감독, 극장 체인(CJ CGV)과 한 그룹사인 배급사(CJ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여러모로 비교가 되는 영화였다.
이 감독으로서도 당연히 하늘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감독이 밝힌대로 이 영화는 당초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12월 둘째 주 이전 개봉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태풍 피해를 입으면서 촬영이 지연됐다. 제작비 부담까지 생겨 찍고 싶었던 장면도 여럿 못 찍었고 그래서 연결이 불가능해져 찍어놓은 장면들도 못 내보내는 것들이 생겼다. 결국 개봉 시기가 새해 1월23일로 한 달 넘게 미뤄지면서 당초 ‘12월23일’이었던 제목도 ‘7번방의 선물’로 바뀌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런데, 뚜껑을 여니 상황은 달라졌다. ‘7번방의 선물’은 개봉 당일 그때까지 2주 가까이 나 홀로 흥행하던 ‘박수건달’을 꺾고 1위로 출발하더니 단독질주에 나섰다. 예상치 않은 돌풍에 위기감을 느낀 ’베를린‘은 31일로 예정했던 개봉일을 1.5일이나 앞당겨 29일 전야개봉으로 돌풍 차단에 나섰다. 물론 130억원 대작답게 ‘베를린’이 1등으로 올라섰지만 ‘7번방의 선물’의 열기까지 식히지는 못했다. 결국 7일 1위를 되찾은 ‘7번방의 선물’은 여세를 몰아 1000만 관객을 노리기에 이르렀다.
‘7번방의 선물’이 지난해 12월 둘째주 목요일인 13일에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그날 개봉작은 할리우드 판타지 블록버스터 ‘호빗: 뜻밖의 여정’(감독 피터 잭슨)이었다. 최종 흥행성적은 280여만명에 불과했지만 개봉일에 1011개 상영관에서 4079회 상영되며 15만8070명을 모아 극장가를 초토화시켰다. 그보다 앞서 지난해 11월29일 개봉해 전날까지 흥행 1위를 고수하며 누적 관객 206만여명을 기록 중이던 진구(33) 한혜진(32) 임슬옹(26)의 액션 ‘26년’(감독 조근현)도 ‘호빗’ 앞에서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할 정도였다. 한 주 전인 지난해 12월6일 막을 올린 로맨틱 코미디 ‘나의 PS 파트너’(감독 변성현)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한계를 딛고 전날까지 80만여명을 모을 정도로 나름 흥행에 성공하고 있었다.
그 틈에서 개봉한다는 것은 충분한 상영관을 확보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내 극장들은 성격이 급해 첫 주말 성적이 나쁘면 바로 상영관을 빼앗아 잘되는 영화에게 나눠 주거나 다음 주 개봉작들에게 준다. 상영관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영화의 성적이 좋을 수 없을테니 상영관이 줄었을 것이 분명하다. 관객 입소문이 중요한 코미디로서는 힘도 제대로 못 써보고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 12월19일 개봉작들이다. 이날은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라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감독 톰 후퍼)을 비롯해 코미디 ‘가문의 영광5: 가문의 귀환’(감독 정용기), 멜로 ‘반창꼬’(감독 정기훈) 등이 대거 개봉했다. 바로 한 주 뒤 엄습한 이들 강자들 틈에서 ‘7번방의 선물’은 어떤 뒷심을 발휘했을까. 생존할 수는 있었어도 흥행 대성공은 어려웠을 것이다.
1월23일은 달랐다. 한 주 가량 앞선 17일 개봉 예정이던 톰 크루즈(51)의 액션 ‘잭 리처’(감독 크리스토퍼 매쿼리), 다음 주 ‘베를린’이 워낙 기대를 모으면서 국내외 영화들이 슬금슬금 맞붙기를 피했다. 덕분에 ‘7번방의 선물’은 만화영화 ‘뽀로로 극장판’이나 스페인 호러물 ‘마마’(감독 앤드레스 무시에티) 등 다소 만만한 작품들과 함께 개봉할 수 있었다. 운이 좋으려니 ‘잭 리처’는 의외의 흥행 부진을 보이기까지 했다. 대중적 호평을 듣기 시작한 ‘7번방의 선물’에게는 무주공산의 맹주가 될 발판이 생긴 셈이다.
‘12월23일’에서 ‘7번방의 선물’로 제목이 바뀐 것도 결과적으로는 흥행에 도움이 됐다. 이 감독은 “12월23일이 영화에서 상징적인 날인 데다 크리스마스라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날을 가장 슬프게 맞는다는 의미에서 12월23일로 제목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성장한 예승’으로 박신혜(23)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왠지 쓸쓸한 느낌을 준다 싶었을 정도로 ‘12월23일’이라는 제목은 어둡고 시려웠다. 비극의 느낌이 묻어났다. 반면 바뀐 제목은 좀 더 밝고 부드러우면서 동화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느낌이어서 이 영화의 이미지와 더욱 부합하다는 평가다. 이 영화의 장르는 물론 예고편, 포스터 등 관객들이 호감을 갖게 만든 마케팅 장치들도 ‘12월23일’ 보다는 ‘7번방의 선물’에 어울린다.
이 감독은 “개봉이 미뤄지면서 태풍도 원망스러웠고, 하늘도 무심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영화를 20년 가까이 만들고 있는데 아직도 흥행은 모르겠다. 앞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안 좋은 상황을 겪는다고 해도 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에만 전념하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