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너무 쉬운 일만 시켜도 '왕따'?

2013-02-02     송윤세 기자

# 회사원 A씨(38)는 자신의 연차에서 할 수 없는 쉬운 일을 시키는 상사의 지시에 어이가 없었다. 후배가 해도 충분할 일은 굳이 본인에게 시키는 것이 황당했다. A씨는 지난 회의에서 상사와 다른 방향으로 업무를 추진하자고 주장했던 일 때문에 자신이 '찍힌'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 직장인 B씨(33)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직장동료 C씨(34)가 자신을 상대로 장난을 쳐 곤혹을 치렀다. 당장 내일 아침 부장에게 제출해야 할 자료를 C씨가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숨겨 오후 내내 자료를 찾았기 때문이다. 서류를 돌려받고 화가 난 B씨는 '장난이 심하지 않냐'고 따졌지만, C씨는 '장난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냐?'며 오히려 B씨를 속 좁은 사람으로 몰아갔다.

흔히 '따돌림'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집단이 개인을 상대로 하는 행위로 생각하지만, 해외에서는 개인이 개인을 상대로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낄 정도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따돌림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르웨이 버겐대 따돌림 연구소가 직장 내 따돌림을 조사하기 위해 만든 '부정적 경험 설문지'에 따르면 본인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난이도가 낮은 일을 하도록 지시받거나 중요한 정보를 상대방이 알려주지 않아 본인의 성과가 영향을 받는 일을 당하는 것도 직장 내 따돌림을 받는 것으로 간주했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 본인을 상대로 물건을 숨기는 등의 장난을 치거나, 병가나 휴가 등 본인이 누릴 권리가 있는 것들을 요구하지 못하게 압력을 주는 것도 따돌림의 한 종류로 봤다.

이 밖에 본인이 다가가면 상대방이 소리를 지르거나 반복적으로 화를 낸다거나 불가능한 마감기간이나 목표를 달성하도록 요구를 지속적으로 받는 것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버겐대 따돌림 연구소는 설문지에 제시한 22가지 유형 중 하나 이상의 행동을 1주일에 1회 이상, 6개월 이상 겪고 있을 때 직장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전문연구원은 "우리나라 등 아시아권에서는 따돌림을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로 생각하지만 해외에서는 개인과 개인 간에서도 충분히 따돌림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에서 본인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할 때 응답자 스스로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여기는가를 묻는 주관적 방식(self-report), 버겐대 따돌림 연구소가 제시한 질문지를 통해 묻는 도구적 방식(operational approach)으로 나뉠 수 있는데, 따돌림 발생률은 주관적 방식이 도구적 방식보다 높은 수치를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나 일본 등에서는 따돌림 발생률을 조사할 수 있는 도구적 방식의 질문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 연구원이 2010년 의료계 전문직·생산직·서비스직·금융계 분야에 종사하는 직장인 244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도구적 방식조사)를 한 결과 직장 내 따돌림 발생률은 4.1%로 집계됐다.

 

 6개월간 따돌림을 전해 겪지 않았다고 답한 근로자는 겨우 13.4%에 그쳤다. 10명 중 8~9명의 직장인이 한 번쯤 회사에서 불쾌하거나 부당한 일을 경험한 것으로 풀이된다.

따돌림의 주요가해자로 직속상사가 59.6%로 가장 많았고, 직장동료 29.8%, 부하직원 11.9%, 기타상사와 고객이 각각 9.9% 순으로 조사됐다.

직장인들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동료일 때보다 상사나 부하직원일 때 더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여성은 자신이 가해자가 되는 것이 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남성은 피해자가 되는 것에 대해 더 거부감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따돌림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직무만족도가 떨어지고 신체적으로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따돌림 1건으로 인해 한해 발생하는 비용이 중견기업을 기준으로 최소 1550만원 가량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서 연구원은 밝혔다.

서 연구원은 "직장 내 따돌림으로 근로자와 조직에 피해가 있지만 국내에는 직장 내 따돌림과 관련된 어떤 규제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국가 중 스웨덴과 프랑스는 가장 먼저 직장 내 따돌림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고, 이어 노르웨이, 덴마트, 네덜란드, 핀란드, 벨기에, 최근 세르비아에서도 관련법을 마련했다.

캐나다(퀘백·마니토바·온타리오주)와 호주(퀸즈랜드·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는 일부 주에서만 따돌림 방지법이 실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