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에 안전벨트를-팍팍한 서민의삶]자식 뒷바라지에 대출금 갚다보니 어느덧 '정년 코앞'

2013-01-05     홍세희 기자

 28년간 대기업 생산직에 종사하며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김도형(52·가명)씨.

정년을 5년 남겨둔 김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직장인 딸과 아들을 둔 김씨의 자녀들이 '결혼'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자식들이 직장을 잡아 한시름 놓은 줄 알았는데 이젠 결혼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며 "모아놓은 돈들이 많지 않아 지원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걱정이 많다"고 토로했다.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 생산직에 입사해 바쁠때는 주야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하며 불철주야 일해온 김씨는 자식들 만큼은 좋은 대학을 나와 '사무직 노동자'가 되길 바라 열심히 뒷바라지 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 소위 '강남 엄마·아빠'처럼 고액 과외를 시켜주거나 학원을 몇군데씩 보내진 못했지만 아이들은 큰 문제없이 잘 자라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직장에서 아이들 학자금을 지원해줘 크게 버겁진 않았지만 연년생 자식들을 동시에 대학을 보내놓으니 지출되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노모까지 모시고 사는 김씨는 내집마련을 위해 성실히 돈을 모았지만 결국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매달 지출되는 대출 이자와 아이들 교육비, 생활비로 노후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씨는 "대출금을 모두 갚는데 무려 13년이 걸렸다"며 "그 후 노후자금을 마련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돈이 모이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김씨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자위했다. 친구나 동창들 중에는 다니던 회사가 망하거나, 형편이 어려워져 강제퇴직을 당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 키우고 교육시키다보니 돈을 모을 시간이 없었고, 자식만을 위해 평생 고생하신 어머님께 호강 한 번 시켜드리지 못했는데 정년이 벌써 코 앞에 다다랐으니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동병상련의 친구들과 신세 한탄 소주 한 잔을 자주 걸치다보니 최근엔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매년 받는 건강검진 결과 고혈압이 나왔다. 업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술 한잔 기울이는게 유일한 낙이었던 김씨는 건강검진 결과를 계기로 자신의 생활습관을 되돌아 봤다.

그는 1주일에 2~3번 술을 마시고 담배는 하루에 반갑씩 태운다. 운동이 좋다는 건 알지만 휴일에는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고 TV를 보는것이 진정한 '휴식'이라고 생각해 운동도 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니 건강에 빨간불이 커진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술 먹는 횟수를 줄이고 1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20여년간 이어온 생활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자니 만만치 않다"고 혀를 내둘렀다.

직장에서도 눈치보기 바쁘다. 경기가 어려워져 일감이 줄어들었을때 느끼는 부담감이 예전보다 크다. 정년퇴직이 다가올 수록 그 부담은 커져만 간다.

그는 "정년퇴직이 다가오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 둘 수도 없다.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나면 아내와 함께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싶지만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김씨 뿐만 아니라 많은 베이비부머(1955년~1963년도 출생자들)가 노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1년 말 리서치 업체에 의뢰해 전국 베이비부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퇴직 이후 노후생활 준비 정도'를 묻는 질문에 '별로 준비돼 있지 않다'는 응답자는 37.8%에 달했다.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는 응답자도 18.5%나 됐다.

베이비부머의 절반 이상이 노후생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이다.

김씨는 "젊은시절 가족을 부양하느라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정년퇴직이 다가오니 걱정이 많다"며 "대한민국이 100세대를 눈 앞에 두고 있는 만큼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는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오늘도 김씨는 건강관리를 위해 평소보다 1시간 일찍 기상해 자전거에 오른다. 뼛속까지 시린 찬 바람을 가르며 직장으로 향하는 그의 머리 위로 붉은해가 조금씩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