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9-여1' 솔로대첩, 우왕좌왕 싱겁게 끝나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 남성 대부분 쓸쓸히 발길 돌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전국 '솔로'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솔로대첩'이 열렸다. 하지만 행사 진행이 미흡해 참가자 대부분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혹한 속 청춘남녀들은 야심차게 솔로 탈출 계획을 잡았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싱겁게 끝났다. 사실상 소문나 잔치에 먹을것 없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영하 3도를 기록할 정도로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솔로들의 축제를 시샘하는 듯 했다. 하지만 참가인원 6000명(경찰추산 3500명)의 솔로들이 모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여의도 공원은 벚꽃이 피어날 듯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여의도 공원에 모인 6000명의 솔로들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9대 1을 차지했다. 이번 기회에 여자친구를 만들려는 남성들의 의욕은 불타올랐다.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수많은 참가자들로 여의도 공원은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행사 진행 도우미들은 공원 한 가운데를 기준으로 한쪽은 남성, 한쪽은 여성으로 나눠 세웠다.
참가자들은 '남성은 흰색, 여성은 빨간색'인 행사 드레스 코드에 맞춰 외투나 목도리, 장갑 등으로 각자 개성에 맞춰 한껏 자신을 치장한 모습이었다.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칠하거나 흰색 정장을 빼입은 참가자도 있었다. 또 미성년자로 보이는 애띈 얼굴도 있었다.
오후 3시가 되자 무료 사회를 자처한 개그맨 유민상이 환호성과 함께 등장했다. '진짜 유민상이 왔다'며 참가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유민상은 '3시24분'에 휴대폰 알람을 맞춘 뒤 알람 신호가 울리면 '솔로대첩'이 시작한다고 육성으로 행사 진행 방식을 알렸다. 이어 '솔로대첩 화이팅'을 외치면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참가자들은 솔로대첩에 호기심으로 참가했지만 솔로를 탈출 할 절호의 기호라는 생각에 기대감을 모았다.
빨간 글씨로 '솔로'라는 자수를 한 흰 모자를 쓰고 나온 김태성(23)씨는 "심심하고 호기심에 참가하게 됐다"며 "남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이같은 패션에 포인트를 줬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 구로구에선 온 정조희(47)씨는 "라디오에서 이번 행사를 알게됐고 참가에 제한이 없다고 해서 용기내 참가했다"며 "미래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렌다"고 말했다.
조금 뒤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자 남성 참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여성 참가자들이 있는 쪽으로 '우르르' 달려가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여성 참가자들은 뒤로 물러섰지만 남성 참가자들은 쉬지 않고 앞으로 나왔다.
때문에 참가자들은 짝을 찾기보다 다치지 않기 위해 애쓰며 공원 주변으로 몸을 피하기 바빳다.
공원 측에서 마이크 사용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최측은 목소리 만으로 행사를 진행해야 했다.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운집한 만큼 행사 진행요원들은 여의도 공원을 뛰어 다니며 참가자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오후 4시께 2차 미팅이 진행됐다. 마찬가지로 남성 참가자들은 여성 참가자들에게 우르르 뛰어갔다. 이어 이들은 공원 곳곳으로 흩어져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남성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여성이 있는 반면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한 여성은 부끄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계속 가렸지만 한 남성의 손을 잡았다. 커플이 탄생한 것이다.
이날 박초롱(21·여)씨와 커플이 된 제갈성만(24)·씨는 "근처 피씨방에서 놀다가 잠깐 구경왔다가 커플이 됐다"며 "크리스마스를 앞두로 이렇게 기쁜 일이 생질 줄 몰랐다"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제갈씨는 "어젯밤 돼지꿈이 솔로탈출을 암시했던 것 같다"며 "인근 커피숍에 가 이야기를 하며 서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여의도 공원을 맴돌다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들 대다수는 이성에게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다.
종로구에서 온 김진수(23)씨는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며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나온게 잘못인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대학생인 정나래(24·여)씨는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었다"며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돌아가려니 착찹하다"며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행사 관계자는 "불법 집회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마이크 등 방송장비를 사용하지 못해 행사 진행이 원만하지 못했다"며 "참가자들이 우왕좌왕하게 만들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여름과 겨울 2차례 솔로대첩 행사를 다시 진행 할 예정"이라며 "다음에는 만반의 준비를 통해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은 형사 62명을 포함한 230여명이, 행사 주체 측은 100여명의 자치경찰단(자경단) 등을 여의도 공원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