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할리우드 진출, 첫 술에 배부를 거라 생각하지 않아"

2012-12-13     박영주 기자

 "언젠가는 할리우드 곳곳에서 나를 찾을 수 있는 상황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시나리오를 고를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배우 이병헌(42)이 내년 3월28일 개봉을 앞둔 영화 '지.아이.조2'로 할리우드 스타 반열을 노린다. 2009년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지 4년 만이다.

'지.아이.조2'는 세계 최고의 특수 군단 '지아이조'가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 조직 '자르탄'의 음모로 인해 군단의 존재까지 위협받는 위기에 처하자 살아남은 요원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숙명의 적 '코브라'뿐 아니라 자르탄을 상대로 전쟁을 펼치는 과정을 그렸다.

전작에서 이병헌은 하얀 복면을 쓰고 자유자재로 칼을 휘두르는 '스톰 섀도'를 연기했다. 제법 비중이 높은 역할이었지만 복면을 쓴 채 촬영이 진행돼 세계에 얼굴을 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시즌2에서는 직접 복면을 벗어 던지며 지아이조를 위협하는 자르탄의 비밀병기가 된다.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아시아 배우가 할리우드로 나갈 경우 맡게 되는 '악역의 공식'은 깨지 못했다.

이병헌은 12일 홍콩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지.아이.조2' 3D 영상 최초공개 아시아 프레스 데이에서 "너무나 전형적인 모습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고 나 나름대로의 갈등도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첫 술에 배부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긍정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선택하는 건 기대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아이.조'처럼 블록버스터 대작에서 내가 어떤 역할이 됐던 그 과정을 발판 삼고 싶다. 지금도 나는 어떤 시나리오가 올 지 기다리는 입장의 배우이지만 언젠가는 여기저기서 날 찾아줄 거라고 믿는다. 지금은 그 과정일 뿐이다"는 마음이다.

또 "스톰 섀도가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특히 시즌2에서는 그의 비밀스러웠던 과거가 드러난다. 이 인물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고 기대감을 높였다.

삼십대 후반 나이에 시작한 늦은 도전이었지만 배우는 것도 많았다. 특히 "'지.아이.조2'에서 함께 작업한 브루스 윌리스는 인상 깊었다"고 했다. "'지.아이.조2'에서는 짧게 만났지만 내년 하반기 개봉 예정인 '레드2'에도 함께 출연하며 긴 시간을 볼 수 있게 됐다. 내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잘해주신다. 굉장히 젠틀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배우로서도 놀랐다. "그 정도의 나이(57세)면 촬영장에서 연기하는 게 일상처럼 느껴질 것 같은데 늘 촬영하기 1~2시간 전에 와서 감독과 얘기를 한다. 다른 아이디어를 많이 가져와서 제의하고 그 부분이 받아들여지면 모든 대본이 리셋되고 새로운 대사를 만들게 된다. 굉장히 심사숙고 하면서 의논하는 모습을 보며 신인이 가지고 있는 열정 이상의 것을 느꼈다. '자신을 편안하게 놔두지 않는구나'를 느끼게 됐다."

이병헌은 "할리우드 영화를 연기할 때 그들이 갖고 있는 문화를 습득하고 연기하지만 그들의 말투와 행동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노하우를 전했다. "한국에서는 감정 그대로 표정에서 나온다. 할리우드에서 한국처럼 연기할 경우 관객들이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이면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특유의 제스처와 표정을 짓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껍데기가 될 뿐이다. 내 표정이 어떻게 표현이 되더라도 그 감정이 그대로 전달될 것 같다는 믿음으로 연기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이제 막 발을 뗀 신인 배우이지만 국내에서는 데뷔 20년차 중견배우로 연기력과 인기를 동시에 얻었다. 특히 올해 9월 개봉한 '광해'는 123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 3위에 올랐으며,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15관왕을 휩쓸기도 했다.

"영어로 '지.아이.조2'를 촬영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극 분장에 말투를 한 채 '광해'를 촬영했다. 참 다이내믹한 한해였다"고 웃었다. "대종상 시상식 때는 '레드2' 촬영 차 런던에 머물렀다. 외국이라 그냥 멍하니 있었는데 갑자기 문자가 쏟아졌다. 나중에는 전화처럼 문자가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긴장하게 됐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하선'처럼 엉덩이춤을 추지 않았을까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병헌은 2012년은 일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좋은 일이 많았던 한해였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미국에서 '지.아이.조2'를 촬영하고 한국에 들어와 사극 영화를 찍고 공약을 지키러 다녔다. 또 바로 '레드2' 촬영차 몬트리올, 영국을 갔다가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에 귀국했다. 배우로서 이렇게 즐거운 삶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광된 순간이었고 뿌듯했다.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올 한해 '광해'로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 '지.아이.조2' '레드2' 등으로 할리우드 진출도 활발했고요. 연인(이민정)과의 사랑도 이뤘습니다. 무엇하나 빠지지 않고 다 중요하고 행복한 것 같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