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시작][구찌]"포기를 모르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가치"

2012-11-11     민숙영 기자

최근 한국산 화장품의 선전과 한류영향 등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제품의 인기가 어느 때 보다 높다. 국내 기업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이런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낮은 수준의 저가 제품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았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몇 년 사이 화장품과 패션 등 일부 국산제품은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제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높다. 패션 종주국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진입 장벽은 현실적으로 너무 높다.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태어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명품들의 시작과 발전, 성숙기를 통한 명성 등 그동안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 이들의 전략을 분석해 본다. 이를 통해 한국산 명품 브랜드가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시간에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의 자존심 '구찌(GUCCI)'를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주]

구찌의 시작은 '승마'였다. 포기를 모르는 기수처럼 어려움을 뛰어넘으며 이탈리아 명품의 가치를 이어오고 있는 '구찌'.

구찌오 구찌(Guccio Gucci)는 1921년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가죽용품과 작은 가방을 판매하는 상점을 운영했다.

가게를 열기 전 런던의 사보이(Savoy Hotel)에서 일하며 귀족과 상류층의 문화를 터득했던 구찌오 구찌는 이를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과 결합한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고향인 플로렌스로 돌아와 두 개의 매장을 연 그는 몇 년 뒤 승마에서 영감을 얻은 홀스빗(Horsebit) 장식을 제품에 반영해 큰 인기를 누렸다.

당시 승마를 즐기는 귀족층은 구찌의 주요 고객이 됐다. 구찌는 승마에서 본뜬 가방과 트렁크, 장갑, 신발 등을 거듭 선보이며 명성을 떨쳤다.

구찌를 찾는 투스카니의 귀족 가문과 부유한 외국인 관광객들로 구찌의 아틀리에는 패션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1930년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이탈리아에 수출을 금지령을 내리며 구찌는 물자 부족으로 어려움에 놓이게 됐다.

이때 구찌는 부족한 재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마와 삼마, 대나무 등 새로운 재료를 찾아 위기에서 벗어났다.

대마와 삼마 등을 직조해 작은 다이아몬드 형태가 서로 연결되는 구찌의 대표적인 프린트를 선보여 수트 케이스 제작에 이용했다.

1940년대에는 대나무 손잡이가 특징인 말안장 형태의 뱀부(Bamboo)백을 선보여 큰 성공을 거뒀다.

구찌 관계자는 이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격언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구찌만의 독특한 열처리 과정을 거쳐 제작된 뱀부백은 페데리카 왕비, 그레이스 켈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데보라 커 등 당시 유명인에게 사랑받는 제품이 됐다.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한 구찌. 1950년대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승마와 전통적인 말안장 끝에서 영감을 얻은 그린-레드-그린 웹(Web) 무늬를 선보였다.

이후 알파벳 G가 맞물린 형태의 로고를 제작한 1960년대 이후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등 해외로 매장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재키 오(Jackie O)백, 그레이스 켈리를 위한 꽃과 곤충 모양으로 이뤄진 플로라 컬렉션도 만들어졌다.

특히 아직까지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플로라 라인은 한 개의 디자인에 37가지 색상을 사용하고 있다. 고유의 프린팅 기술을 사용해 프린트가 반복되는 부분 없이 각각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진다.

구찌는 플로렌스 근처 까셀리나에 새로운 공장을 열고 계속 사업을 해외로 확장했다.

아울러 새로운 소재와 생산 과정에 대한 연구 등을 위해 그 분야에서 가장 능력 있는 장인을 고용했다. 구찌는 산업발전시기를 거치며 브랜드의 장인정신과 품질에 대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1982년 가족 경영진 간 내부적인 전략적 결정을 통해 구찌는 주식회사가 되고 로돌포 구찌의 아들 마우리찌오가 경영을 맡게 됐다.

1989년 앵글로-아랍계 소유 회사인 인베스트코가 알도 구찌와 그 후손들이 회사 지분의 50%를 인수했다.

나머지 50% 지분과 경영권은 마우리찌오가 계속 유지하도록 했으나 결국 1993년 마우리찌오는 자신이 보유한 모든 지분을 인베스트코에 매각하게 됐다.

그러나 구찌는 3년이라는 기간 내에 회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도미니코 드 솔레와 톰 포드가 새로운 브랜드 출시에 책임을 지며 구찌는 전통과 혁신을 앞세운 현대적 감각의 패션을 선보였다.

이에 유럽언론협회는 1998년 구찌의 경영성과를 높이 평가해 '올해의 유럽기업'으로 선정했다.

플로렌스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한 구찌는 올해로 전 세계 403개 직영 매장을 운영하며 핸드백과 의류, 신발, 액세서리 등을 생산하는 세계적 명품이 됐다.

독창적인 디자인과 어려움에 대처하는 위기관리 능력 등을 통해 구찌는 9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

     구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