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산이 품은 비경 ‘와룡골’
바야흐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돌아왔다.
황금 들녘엔 곡식들이 익어가고 산들은 울긋불긋한 단풍옷으로 갈아 입고 있다. 조석으론 제법 싸늘한 기운이 감돌지만 청명한 하늘은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가을은 나들이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온에 온통 오색으로 물든 단풍들을 바라보며 걷는 기분은 부지런한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나 다름없다.
현실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을 품기 위해 떠날 수 있다면 더없는 행복감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가을의 문턱, 많은 시간을 내어 멀리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잠시 짬을 내어 이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경남 사천시 벌용동 소재 용두공원. 옛 삼천포 시가지에 인접해 있는 공원으로 와룡산(801.4m)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와룡골에 자리하고 있다.
최고의 명산중 하나로 꼽히는 와룡산은 바다를 내려다보며 산행할 수 있는 전국에 몇 안되는 산으로도 유명하지만, 사계절 색다른 옷으로 등산객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명산의 한 골짜기인 이 곳은 사계절 맑은 물과 넉넉한 자연의 품을 마음껏 느낄 수 있어 시민들의 체육공간으로, 때론 휴식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용강마을에서 시작되는 산책코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가벼운 옷차림으로 걸을 수 있어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해 가족끼리 소풍 가는 기분으로 떠나면 더더욱 좋다.
잘 정돈된 산책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물은 마치 수정처럼 맑아 주변의 경치와 조화를 이뤄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군데군데 조성돼 있는 체육시설과 지친 몸을 잠시 쉴 수 있는 정자들, 그리고 인근 편백숲은 휴식은 물론 건강지킴이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곳곳에 피어 있는 꽃들과 아기자기한 공원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구름다리가 나온다. 여기를 지나면 마치 푸른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와룡저수지가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잔잔한 물과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저수지를 바라보며 쉼호흡을 한 번 하고, 예쁜 정자에 앉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일상의 스트레스는 온데간데 없어진다.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면 이젠 저수지를 둘러 볼 차례다. 오솔길을 따라 주변을 걷다보면 와룡마을이 나온다. 이 곳에는 수 백년은 족히 됐을 법한 정자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저수지를 굽어보며 버티고 서있다.
정자나무를 뒤로하고 저수지 주변을 걷다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비경’을 만나게 된다.
저수지 한가운데 왕버들이 물속에 잠긴 모습이 아름다워 사계절 사진작가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는 경북 청송의 ‘주산지’.
와룡저수지 한켠에도 몇그루의 왕버들이 긴 가지를 늘어뜨린 채 물빛에 반사된 모습이 마치 주산지를 옮겨 놓은 듯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와룡저수지를 뒤로한 채 와룡골을 향해 걷다보면 한가로운 농촌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작은 시골집들과 구불구불한 논밭들, 지천에 피어있는 이름모를 들꽃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걷다가 고개를 들어 왼쪽을 바라보면 와룡산 최고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최고봉인 새섬바위와 상사바위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절경에 취해 한 시간여 걷다 보면 와룡골에 도착한다. 이 곳은 대략 4㎞코스의 마지막 지점이자 본격적인 와룡산 등산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인근에는 청룡사란 절도 있고 와룡골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한적한 곳이기도 하다.
주말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가을을 느끼고 싶다면 이 곳을 찾아 ‘느림의 미학’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