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이 상팔자'... 하우스푸어의 가을하늘은 '잿빛'

2012-09-21     표주연 이혜원 기자

 이름을 대면 알만한 중견업체의 핵심간부인 P부장(51)은 요즘 핸드폰 벨소리만 울리면 덜컥 겁부터 낸다.

"4년전에 퇴직을 생각하며 대출을 끼고 용인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완전히 폭탄으로 돌변했습니다. 그동안 매월 130만원대의 이자를 꼬박꼬박 냈지만 지금은 분양가에도 못미치는 집값에다, 고스란히 남아있는 주택담보대출 원금이 내 삶을 완전히 꼬아놨습니다."

P부장은 요즘 은행에서 원금 상환을 독촉하는 전화에다 세입자로부터 전세자금을 빼달라는 요구까지 2중, 3중의 압력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다.

부동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우리사회에 '하우스푸어(집을 보유한 가난한 사람)'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하우스 푸어는 108만 가구(소득의 40% 이상을 대출 원리금으로 사용하는 가구·현대경제연구원).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0%에 달한다. 이중 8.4%인 9만1000가구는 이미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하고, 30.4%인 33만 가구는 대출 기간을 연장해 주지 않으면 파산 위기에 몰릴 처지라고 한다.

◇"집값이 똥값이라 팔 수도 없고, 안 팔 수도 없고..."

경기도 고양시의 김 모씨(52세·여)는 집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는 2008년 퇴직을 염두에 두고 전용면적 85㎡의 아파트를 4억원에 구입했다. 당시 시세보다는 2000만원 정도 싼 가격이라 꽤 흡족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은행대출 2억원을 끼고 샀지만, 당시만해도 김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집을 구입한 시점이 바로 부동산거품이 붕괴되기 직전. 김씨는 현재까지 한달에 이자와 원금 포함 140만원을 갚고 있다. 아직 대학생 딸의 등록금도 내야 하는데 무리하게 집을 산 것이 화근이었다. 현재는 집을 팔아치우려고 해도 팔리지 않는다. 이제 집값은 3억4000만원 정도로 6000만원이 떨어진 상태. 급매로 내놓게 되면 더 싸게 팔아야 할 판. 김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부동산=안전한 재테크'라는 등식 아래 은행 대출까지 동원하며 집장만에 올인했던 상당수 중산층들은 요즘 '무주택이 상팔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한 모씨(57세)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지난 2009년 은평구 뉴타운에 115㎡의 아파트를 7억5000억원에 구입했다. 사업도 그럭저럭 유지되던 때라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3억원 받았지만 크게 부담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단다. 문제는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가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한 지난해 초부터. 수입은 줄어드는데 매달 이자만 180만원씩 부담하려니 생활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힘겨워졌다.

한씨는 현재 회사에 다니는 아들의 월급까지 보태서 이자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 사이 집값은 6억원대로 떨어진 상태. 한씨는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하우스푸어 구제책 '갑론을박'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경제계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참이다. 하우스푸어에 대한 지원 규모와 방식이 문제다.

대선후보와 정당에서는 하우스푸어에 대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후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우스푸어 문제를 일정부분 구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새누리당은 '공적매입 뒤 임대전환'을 방안으로 내놓았다. 하우스푸어의 집을 정부가 구매한 뒤 이를 다시 임대하는 방식이다. 또 '채무재조정'도 거론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거치기간 연장과 고정금리 변경 등으로 상환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하우스푸어를 3개 계층으로 나눠 맞춤형 지원을 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자신의 능력보다 무리하게 집을 샀기 때문에 이를 세금으로 구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자기책임'이라는 투자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는 말도 설득력을 얻는다.

이들을 세금으로 구제한다면 40%의 무주택자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 무주택자에게 너도나도 빚을 내서 집을 사두면 정부가 구제해준다는 선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우스 푸어 108만 가구... "내년이 진짜 고비"

문제는 하우스푸어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 자칫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돌변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하우스푸어가 중산층이란 점도 부담이다. 108만가구라는 뇌관이 터지면 우리사회의 양극화는 치유불능의 상태로 치닫을 수 있다.

'아파트 없는 중산층'에서 '아파트 소유 빈곤층'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중산층이 완전히 붕괴하는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구제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내년이 더 고비다.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306조5000억원.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대출은 전체 76.8%, 235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중 내년까지 거치기간이 끝나거나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은 128조 원에 달한다.

전체 주택대출자의 42%에게 원금상환 시기가 임박한 셈. '중산층 몰락'이라는 공포 시나리오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