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덫... 우리 이웃의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① "결혼이요? 책임질 수 있어야 하죠"

2012-09-17     박주연·이국현 기자

무디스, S&P,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가 최근 앞다퉈 '한국 경제는 탄탄한 기반 아래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국가 신용등급을 '최우수 국가' 수준으로 상향조정했다. 유로존 위기로 글로벌 경제가 극히 불투명해졌지만 다른 여러나라와 달리 한국경제의 실력이 막강해졌다는 객관적인 평가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의 찬사와 달리 한국에서의 하루는 너무 힘겹다.

가계대출 1000조 육박, 전세자금대출 22조, 하우스 푸어와 랜트 푸어의 증가. 불황의 덫에 걸려 미래를 꿈꾸기 힘든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한다. 살아갈 힘을 잃은 노인들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한 집안의 가장은 벌금 낼 돈을 아끼느라 감옥살이를 선택하고, 또 다른 가정의 아이들은 삶에 쫓기는 어른들의 방치 속에 길거리를 전전한다.

2012년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얼굴에는 '양극화로 더욱 심화된 불황의 고통'이 깊은 주름으로 패어있다.

뉴시스는 창립 11주년을 맞아 우리 이웃들의 안타까운 삶을 조망, 이들이 불황의 그림자를 거둬내 밝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무거운 마음으로 '불황의 덫... 가정이 무너진다'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아이가 나 같은 인생을 산다면 상상만으로도 너무 두렵다"

"연애·결혼·출산요? 진작 포기했어요. 삼포(三抛)세대가 된거죠. 물가는 오르는데, 비정규직이라 월급은 적고… 연애·결혼은 엄두도 못 내죠. 만약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는 안 낳을 거에요. 그 아이가 저와 같은 삶을 살게 될까봐 두렵거든요. 저 사실 자살도 생각해봤지만 용기가 없어서 포기했어요. 아이를 낳아서 저랑 비슷한 인생을 살게 한다고요? 저 혼자 살다 죽는 게 낫죠."

직장인 김광수씨(가명·37)는 혼자다.

아침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일어나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출근한 뒤 저녁에 다시 적막한 빈 집으로 들어가는 일상을 무려 17년간 반복했다. 지긋지긋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가 처음부터 결혼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신분, 낮은 연봉, 오르는 물가는 그가 연애도, 결혼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여자들은 전셋집 하나 구할 수 없는 그를 반기지 않았다.

공무원 이철민씨(가명·38)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김씨는 최근 소개팅을 통해 나이가 비슷한 한 여성을 만났고 서너 차례 데이트를 즐겼다. 취미 생활은 물론 인생관도 비슷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여성이 은근슬쩍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내비치자 이씨는 뒷걸음쳤다.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3년 전부터는 결혼을 할 엄두가 안 나네요. 신혼집을 구하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고, 거기에 아이까지 생기면 교육비 부담이 더해지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여자한테 기댈 수도 없고, 아직은 경제적 여력이 부족합니다."

이씨는 요즘 친구들이 '기저귀 값을 번다', '학원비를 번다'는 말도 남의 얘기처럼 안 들린다고 한다. 결국 그는 주말의 달콤한 데이트를 포기했다. 둘이 살면서 겪게 될 빈곤은 사양하고 싶었다.

박민정(가명·여·31)씨 역시 결혼을 포기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하고 싶은 것이 많아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다 보니 모은 돈이 거의 없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는데 조건이 너무 열악했다.

"막상 결혼을 하려고 보니 지방에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취직한 지 얼마 안돼서 월세 내느라 모아놓은 재산도 없더라고요. 결혼도 대출 받아서 할 것 같은데 도저히 자신이 없었어요."

아이 욕심도 없다는 박씨는 이제 나이 들어 기반을 잡고난 후 함께 노후를 보낼 남자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1인가구 5년마다 10만 가구씩 ↑

화려하지 않은 싱글이 급증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주택 전·월세, 과도한 결혼 비용으로 빚을 떠안고 빚을 떠안고 결혼해서 자녀들에게 빈곤을 물려줄 바에야 차라리 혼자 살겠다고 결심한 이들이다.

최근 서울시는 흥미로운 자료를 내놨다. 서울의 2010년 35∼49세 미혼남성은 24만2590명으로, 1990년(2만4239명)과 비교해 20년 사이 10배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45~49세 남성의 미혼율은 1990년 0.7%에서 2010년 8.9%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인 에코 세대(20~33세) 역시 싱글 증가의 한 축이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메아리(echo)처럼 다시 출생붐을 일으켜 태어났다는 뜻의 에코세대는 1979~1992년에 태어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만 20~33세 젊은이들이다.

총 954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9.9%를 차지하는 이들은 대부분 고학력으로, 개인주의적이고 문화·소비 지향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2009년 국제금융위기 등 한파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깊어지는 양극화와 급등하는 물가 속에서 등록금 대출과 구직난을 겪은 이들은 또다시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고 결혼을 해서 허덕이며 개인적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살겠다고 선언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베이비부머 및 에코세대의 인구·사회적 특성 분석' 자료에 따르면 에코 세대 954만명 중 82.4%가 미혼이고, 이들 중 100만명은 혼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인가구는 29세(1981년생)가 11만 가구로 가장 많았다. 28세는 10만9000가구, 30세는 10만3000가구 순이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월세를 내고 산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1인가구는 1980년에 비해 10배 이상 급증했다.

1인가구는 1980년 38만2743가구에서 1985년 66만941가구, 1990년 102만1481가구, 1995년 164만2406가구, 2000년 222만4433가구, 2005년317만675가구, 2010년 414만2165가구로 증가폭을 늘려왔다. 최근에는 5년마다 10만 가구씩 늘어나는 추세다.

주목해야 할 점은 고시촌·비닐하우스·여관 등 '주택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1인가구가 2010년 기준 무려 23만8906 가구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 '주택이외의 거처' 거주자 35만3942가구의 무려 3분의2에 달하는 수치다.

◇1인 가구 증가, 사회적 문제 우려

통계청에 따르면 2035년에는 1인 가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된다.

즉, 2010년 '부부+자녀가구'가 642만7000가구(37.0%)로 가장 많고, '1인 가구'(23.9%), '부부가구'(15.4%) 순이지만 2035년에는 '1인 가구'(34.3%), '부부가구'(22.7%), '부부+자녀가구'(20.3%) 순으로 핵분열 양상을 보인다.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1인가구가 되는 셈이다.

김정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비자발적 싱글이 늘어나는 것은 대학 졸업 이후 안정적인 직장을 찾지 못하면서 결혼을 통한 가족 형성이 늦어진 데 따른 것"이라며 "뒤늦게 결혼을 하려고 해도 혼수나 집값 등 결혼 비용도 많이 들고, 육아에 대한 부담도 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뒤늦은 취직으로 1인 가구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지고, 1인 가구에 진입하는 인구는 늘어난다는 것이다.

싱글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싱글이 늘수록 출산도 요원해지고, 저출산과 노령화가 맞물리면서 국가 재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회적 소외 문제도 고민꺼리다.

김 연구원은 "일정한 소득은 안정적인 사회나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만큼 근본적으로는 경기를 살려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며 "단편적으로는 큼 부담을 갖지 않도록 집을 살 수 있도록 주택 정책을 바꾼다든 지 등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012년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불황은 우리 이웃들의 가정을 빠른 속도로 파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