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폭력가장 살해 혐의 모녀 법적용 가혹했다"
검찰이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장을 숨지게한 일가족을 살인등의 혐의로 기소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가혹한 법적용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3일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정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A(46·여)씨와 B(26·여)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남편의 입을 테이프로 막고 방치해 숨지게 한 A씨에게 살인 혐의로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또 A씨를 도와 아버지의 손과 발을 묶은 딸 B씨에게도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3년6월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같은 법 적용과 구형은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하지 않은 판단이었다는 지적이다.
장기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A씨 일가족의 사정을 살피지 않은 채 법조문대로만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찰은 이 사건 범행이 상습적인 가정폭력에서 비롯됐으며 과잉방위였다고 판단, A씨와 B씨에 대해 각각 폭행치사와 존속폭행치사 혐의를 적용,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각각 살인과 존속살해 혐의로 바꿔 기소했다.
검찰은 또 이날 법정에 나온 경찰과 시신 검안의, 부검의 모두 숨진 피해자의 얼굴에서 코를 막은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증언했음에도 A씨에게 "입과 코를 막아 고통스럽게 살해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몰아부쳤다.
A씨가 이 사건 범행 이전까지 25년간 남편에게 수차례 흉기에 찔리고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딸의 간호와 재택 부업으로 어려운 생계를 이어온 사실이 법정에서 증명됐지만 검찰은 "무책임하게 남편에게만 네 자녀의 부양을 책임지게 했냐"고 따졌다.
함께 기소된 딸 B씨에게는 "다 큰 딸이 일정한 직업도 없이 집에 있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날 수 있는 것 아니냐. 직업을 가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추궁하기도했다.
하지만 딸 역시 툭하면 흉기를 휘두르며 엄마와 자신 등 네 남매를 폭행하는 아버지에게 성추행과 폭행을 당하면서도, 돈이 없어 담배꽁초를 주워 피는 아버지의 용돈을 챙겼다.
결국 검찰은 재판 도중 살인 혐의에 대한 공소유지가 쉽지 않아 보이자 뒤늦게 A씨에게 예비적 공소사실로 폭행치사, B씨에게 존속폭행치사 혐의를 추가로 적용, 중형을 선고해 줄 것을 배심원단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배심원은 그간의 가정폭력사실을 고려,A씨와 B씨의 과잉방위를 인정해 전원 집행유예 의견을 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이미 누구보다 큰 괴로움을 겪으며 살아온 점, 평생 형벌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을 방청한 성남여성의전화 이정희 회장은 "피해자가 숨진 결과만을 보고,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피고인이 처한 상황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검찰의 일방적인 태도에 분명한 인식의 차이를 느꼈다"며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