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마이너스대출 급증…"은행·고객 모두 마이너스"

2012-08-23     김재현 기자

 #. 직장인 A(27)씨는 최근 2년 만기 대출(3000만원)을 연장하면서 의아했다. 최초 계약 했던 것보다 금리가 0.2%포인트나 올랐기 때문이다. A씨는 대출을 받은 이후 대출금 상환이나 기타 금융거래에서 연체를 하지 않아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었다.

변수는 몇년 뒤 대출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지인의 말에 지난해 가입한 마이너스 대출 통장이었다. 아직 한 푼도 쓰지는 않았지만 3000만원의 마이너스 대출이 모두 미상환 채무로 묶여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준 것. A씨는 "경기가 불확실해서 미리 만들었던 마이너스 통장이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며 난감해 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래 경기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미리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받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은행으로서는 이자수익 감소, 고객은 신용등급 하락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각 은행에 따르면 마이너스 통장 대출 한도는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었지만 실제 대출 잔액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마이너스 통장 대출 한도는 지난 6월 24조3389억원으로 지난해 6월(24조2855억원)보다 534억원 늘었다. 반면 마이너스 대출 잔액은 9조4654억원에서 9조3369억원으로 도리어 1285억원이 줄었다.

다른 은행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달 하나은행의 마이너스 대출 한도는 15조1880억원으로 작년에 비해 4733억원 늘어났다. 하지만 대출 잔액은 128억원 쪼그라든 7조90억원. IBK기업은행의 지난달 마이너스 대출 한도(3조3116억원)도 지난해에 비해 975억원이나 늘었지만 잔액(1조5790억원)은 고작 37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경기침체가 계속 되다보니 미래에 대출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돼 미리 유동성을 확보해 두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잠자고 있는 마이너스 대출이 늘다보니 은행으로서는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금액을 한도로 제공하더라도 실제로 고객이 사용하지 않으면 이자를 받을 수 없는 법.

예컨데 연 5%로 1000만원을 대출할 경우 매년 50만원의 이자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마이너스 대출의 경우 한 푼도 쓰지 않는다면 이자는 '0'원. 은행은 일종의 기회비용을 날리는 셈이다.

은행이 마이너스 대출 금리를 일반 대출보다 높게 책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채우지 않을 것을 예상해 일반대출 금리에 0.3~1.0%포인트 수준의 가산금리를 붙여 마이너스 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일부 은행의 경우 기업대출에 한해 '한도 미사용 수수료'(수수료율 1.0%미만)를 적용하고 있지만 잠자는 마이너스 대출을 깨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마이너스 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인 고객에게 한도 미사용 수수료를 적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국민 정서상 불가능하다"며 "만기 연장 시 한도 축소를 요구해도 강제 사항이 아니기에 대부분 고객이 한도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잠자고 있는 마이너스 대출이 고객에게도 손해를 입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대출금을 사용하지 않았어도 마이너스 대출 한도가 모두 미상환 채무로 분류돼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한 시중은행 여신정책 담당자는 "미래에 대비해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사용하지 않은 대출 때문에 신용등급이 내려갈 수 있다"며 "기존에 나간 대출의 금리가 인상되는 등 기타 금융거래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