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재벌 회장 구속 '경제민주화'에 부합"
법원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업무상 배임·횡령 및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데 대해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여야가 모두 최근 경제민주화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이번 판결은 그동안 법원의 '재벌총수 봐주기'라는 암묵적 관행을 깨트린 것으로, 경제민주화라는 흐름에 부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화그룹의 수장인 김 회장은 생애 3번째 구속 수감되는 처지가 됐다.
담당 재판부는 판결 직후 "이번 판결은 양형기준에 따른 것으로 과거처럼 경영공백이나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가 정상 참작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여야 정치권은 김 회장 판결과 관련, "경제 정의를 바로 세운 판결"이라며 "이후 재판에서도 재벌 총수에게 면죄부를 줘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재벌과 총수들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이 과거와는 무척이나 달라진 풍경이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지난 1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은 경제 법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날"이라며 "재벌 총수에게 면죄부를 주는 잘못된 관행을 끊지 않으면 그들의 불법·부당행위 근절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 캠프 김종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이번 판결에서) 선고 형량은 법이 규정한 최저한도였지만 법원이 법정 구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법원도 (경제민주화를 강화하는) 분위기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한 법원의 실형 판결을 적극 환영한다"고 법원 판결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변인은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록 1심이지만 그동안 수천 억원을 횡령하고 전횡을 일삼아도 재벌총수라는 이유만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관행이 깨졌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최태원 SK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선종구 하이마트 전 회장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라며 "법원의 올바른 결정이 계속 이어질 것인지 더 지켜볼 일이다. 우리 법원이 재벌의 탐욕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매를 들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최근 확산되고 있는 경제민주화가 재판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법원의 이 같은 기류 변화는 향후 재벌 경영진들의 재판에서도 '서슬 퍼런 칼날'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로써 비슷한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좌불안석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전경련은 김승연 회장에게 법정 실형이 선고되자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인을 법정 구속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과거 국내 재벌 총수들이 경영 비리에 의해 재판에 회부될 때마다 어김없이 이런 성명을 냈다. 하지만 이번만은 큰 반향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재벌 총수들과 경영진들은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나서도 법원의 온정주의에 의해 사면 내지는 집행유예로 재빨리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지나친 법원의 관용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문에서 "김 회장은 그룹 내에서 충성의 대상이며 신의 경지로 불리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꼬집기도 했다.
법원의 이같은 판단은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내세우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담론이나 공약과도 큰 틀에서 의미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대기업의 경제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반칙·불공정거래를 차단해서 공정한 룰로 경쟁하는 '경제 정의'를 이루자는 의미로 읽힌다.
김승연 회장의 구속으로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