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박스에서 명품가방까지'…정치권 검은돈 운반수단 변천사

2012-08-13     김동현 기자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검은돈을 옮긴 수단도 시대별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지난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검은돈 운반 수단이 등장하게 된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는 차명 계좌를 개설해 통장과 도장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검은돈이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금융실명제 실시로 인해 자신의 명의로 검은돈을 주고 받는 것은 주는 사람에게나 받는 사람에게 큰 부담을 줬다. 이 때부터 등장한 것이 다양한 도구다.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됐던 도구는 사과상자와 케이크 상자였다. 일반적으로 사과상자에는 1만원권 지폐가 3만장 들어갈 수 있다고 알려졌다. 현금으로 환산하면 3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케이크 상자는 약 5000만원이 담길 수 있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검은돈의 전달 수법은 지난 1995년 검찰이 한 재벌총수의 집을 수색하면서 드러났다.

당시 재벌총수의 집에서는 현금 61억원이 담긴 사과상자 25개가 발견됐다. 이 현금은 변칙 실명전환을 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돈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또 1997년 한보그룹 정태후 회장은 사과 상자에 현금을 넣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뿌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과상자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사과상자=뇌물상자라고 낙인찍히게 된다.

이 때문에 영광굴비를 담는 상자와 지역 특산물 상자도 자주 사용됐다. 또 골프백도 검은돈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널리 애용되기도 했다. 정가에서는 골프백에 1억5000만원 가량이 들어간다고 알려졌다.

사과박스가 검은돈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골프백은 유용하게 이용됐다. 눈에 띠지도 않으며 자연스럽게 골프장 등에서 건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더욱 은밀하게 돈을 주고받기 위해 사과박스를 차에 실은 상태로 차를 통째로 건네주는 방법을 취하기도 했다.

이는 2003년 당시 한나라당의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세간에 회자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총선을 앞두고 기업을 상대로 정치자금을 받은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검은 돈 거래 양상은 2009년 6월 5만원권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5만원권은 부피를 5분의 1로 줄였고, 더 이상 사과박스가 필요없게 됐다.

이때부터 등장한 것이 쇼핑백이다. 쇼핑백의 종류에 따라 최소 1억에서 5억까지 담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쇼핑백을 넘어 새롭게 운반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이번 새누리 공천헌금 파문의 중심에 있는 루이비통 가방이다.

공천헌금 파문에서 전달책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조기문씨는 평소 큼지막한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 가방에는 최대 3억원까지 담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은돈 때문에 정치 생명을 마감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도 점차 발전하고 있다.

루이비통 가방 뒤에는 어떤 수단이 독이 든 성배로 자리매김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