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고비마다 '자충수' 두는 민주…'웃는' 새누리
민주통합당이 결정적 고비마다 자충수를 둬 새누리당을 미소짓게 만들고 있다.
과거 4·11 총선 당시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에 이어 최근 이종걸 최고위원의 막말 트윗까지 민주당은 알아서 새누리당에 호재를 던져주는 모양새다.
특히 사태 수습에 기민한 모습을 보여야 할 당 지도부는 오히려 우유부단한 태도로 일관해 새누리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국면전환을 가속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비례대표와 여성의원 25명은 지난 10일 막말 논란을 일으킨 이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접수했다.
이들은 "정치권이 어느때 보다 민생에 주력할 때이지만 최근 민주당 지도부의 구시대적 정치공세와 막말행진은 국민들의 시름을 더 깊게 하고 있다"며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게 욕설을 대수롭지 않게 행한 이 최고위원을 윤리위에 제소한다"고 밝혔다.
이 최고위원은 지난 5일 자신의 트위터에 "'공천헌금'이 아니라 '공천장사'입니다. 장사의 수지계산은 직원의 몫이 아니라 주인에게 돌아가지요. 그들의 주인은 박근혜 의원인데 그년 서슬이 퍼레서 사과도 하지 않고 얼렁뚱땅"이라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문제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를 '그년'이라고 지칭한 부분이다. 한 트위터 사용자가 '그년'이란 표현을 지적하며 "순화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 의원은 "'그년'은 '그녀는'의 줄임말이다. 나름 많은 생각을 했다. 사소한 표현에 너무 매이지 말라"고 거절해 스스로 논란을 키웠다.
박 후보 캠프측은 즉각 "시정잡배나 쓰는 욕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에게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은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본의 아니게 (그년이란) 표현으로 듣기 불편했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도 "'이종걸이 너무 무르다'는 말을 해준 분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이 최고위원의 발언이 있고나자 새누리당은 공세의 수위를 한껏 높일 수 있었다.
새누리당 여성위원회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썼다"며 이 최고위원의 사과와 최고위원직 사퇴를 촉구했고 황우여 대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망언"이라며 국회 윤리위 제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박 후보 캠프는 "그의 쌍욕이 의도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국회 윤리위 회부는 물론 의원 자격심사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이 최고위원을 성토했다.
여성계와 시민단체 등 여론도 악화됐다. 여성단체연합은 "4선 의원에 제1야당의 최고위원으로서 상대당 대선후보에게 한 발언으로는 매우 부적절했다"며 사과를 요구했고 한국여성언론인연합도 "이 의원의 여성비하 발언을 강력히 규탄한다. 이런 일이 거듭 발생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수성향의 활빈단은 "국민들에게 정치혐오감을 갖게하고 전체 여성을 비하했다"며 이 최고위원을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했다.
40년 지기라는 노회찬 통합진보당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정치인은 실수할 권리도 없잖소. 무조건 엎드려 비소"라고 한 충고도 듣지 않다가 이 최고위원은 논란의 트위터를 올린지 나흘만인 지난 9일에야 "신중한 언행으로 활동하겠다"며 사과했다.
결과적으로 이 최고위원의 막말 논란은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의혹 파문을 일정부분 희석시키는 호재가 됐다. 대선까지 불과 4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불거진 공천헌금 의혹은 당은 물론 유력 대선주자인 박 후보의 대권행보에도 큰 흠집을 남길만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 최고위원의 막말에 힘 입어(?) 오히려 민주당과 공세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사과 한 마디면 될 것을 왜 화를 자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민주당 지도부의 대응도 너무 안이했다는 평가다. 이 최고위원이 지도부 회의에서 막말 논란을 부채질 하는 듯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던졌지만 지도부 중 누구도 공식적으로 뒷수습에 나서지 않았다.
반면 새누리당은 공천헌금 논란과 관련해 의혹에 연루된 현영희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에 대한 제명을 신속하게 결정하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황 대표가 사퇴키로 하는 등 재빠른 대응을 보였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최고위원의 발언이 조기에 수습됐다면 정국 주도권은 온전히 민주당의 몫이 됐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민주당은 지난 4·11 총선에서도 '자책골'로 화를 자초한 바 있다. 김용민 후보의 막말방송 논란이 그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을 발판으로 선거를 며칠 앞두고 터진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으로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
하지만 김 후보의 '라이스 강간' 발언에 이어 노인비하 발언과 주한미군 장갑차 살해 발언 등이 언론을 통해 연일 공개되면서 김 후보에 대한 비난 여론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막말론의 여파는 자신의 지역구를 넘어 보수 진영을 결집시키기 시작했다.
당초 과반의석까지 넘봤던 민주당은 결국 127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내는데 그쳤다. 김 후보의 막말이 민주당 참패의 전부라 할 수는 없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민주당 지도부가 김 후보의 거취 문제를 신속하게 정리하지 못한 탓에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됐다고 분석했다.
공격 기회를 포착한 새누리당이 김 후보의 여성, 노인, 교회 비하 발언과 욕설을 공개하며 대반격에 나섰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청년층의 무조건적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김 후보를 내치지 못했고 이는 결국 지지층 이탈로 이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새누리당이 공천헌금 의혹 연루자들에 대한 제명을 재빠르게 의결하는 등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반면 민주당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며 "자기 지지층하고만 정치를 하려는 습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이어 "대선은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중도층을 잡아야 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같은 문제에 있어 발빠른 대응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대선국면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