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門냉방 영업금지 30일]명동거리 단속은 시늉만…매출차이 크다보니 너도나도 '활짝'
"과태료를 물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단속을 통해 상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게 목적이다."
서울시가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매장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한 첫 날인 지난 1일. 명동거리에 나온 공무원은 단속의 효과를 확신했다.
올해 들어 서울에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25일. 본격적인 단속을 벌인지 한 달 가까이 됐지만 다시 찾은 명동거리는 가마솥더위에 비례하듯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업소들로 넘쳐났다.
반바지와 미니스커트 등 간편한 차림의 여성들과 안내책자를 든 관광객들은 잠시나마 더위를 피하고자 입구부터 한기가 느껴지는 시원한 매장을 기웃거렸다. 전면이 유리로 된 옷가게들은 문을 마네킹으로 고정시켜 놓은 채 냉기를 거리로 뿜어내기도 했다.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 시간대에는 너나없이 매장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자동문의 작동은 멈췄고 굳게 닫혀 있던 여닫이문도 5할 이상 도미노처럼 열렸다.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말의 기대는 가차 없이 어긋났다. 냉방기는 여전히 켜져 있었고 입구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명동역 인근의 한 문구점 직원은 "보통 단속반은 오후 1~6시 사이에 순찰을 돌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가들은 저녁시간이 되면 예전처럼 문을 열고 에어컨을 켠 채 영업을 한다"고 털어놨다.
불만도 만만치 않았다. 출입문을 닫고 있으면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어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40여)씨는 "한 달에 수천만원의 가게세를 내는 명동에서 문을 닫고 영업하면 매출에 타격이 크다"며 "벌금보다 매출이 중요한 상황에서 단속이 없을 때 에너지 정책을 따를 매장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한 차례 과태료를 낸 적이 있는 의류매장 업주는 "과태료를 낸 뒤 400여만원을 들여 자동문을 설치했지만 명동처럼 상가 간 경쟁이 심한 곳은 작은 서비스 하나라도 뒤처지면 손해가 크기 때문에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상인들은 현실을 고려한 융통성 있는 복안과 지원책을 함께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패션잡화점 주인은 "일괄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특정 시간대나 특정 요일을 정해 그때만큼은 손님 편의에 신경 쓸 수 있도록 배려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어 "에너지 절약 정책에 시민이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획일적인 점검 탓에 단속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행태도 눈에 띄었다. 10여개가 넘는 가게는 비닐 가림막을 설치해 과태료 부과를 교묘히 피했다. 평상시에는 비닐 가림막을 묶어 두고 있다가 단속반이 뜰 때 끈 하나만 풀어 단속반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단속반은 "시정의지를 보이는 매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상참작을 한다"고 했다.
이는 단속에 대한 불신과 무시로 이어졌다. 일부 상인들은 적발 횟수에 따라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낼 수 있음에도 단속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 화장품 매장의 관리인은 "저녁에도 단속반이 가끔 보이기는 하지만 문을 열어놓는다. 단속반이 왔다는 얘기가 들리면 자동문을 가동시키기만 하면 된다"며 "상인들이 단속반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실제로 7월말 현재 서울 지역에서 과태료를 부과 받은 점포는 5곳에 그쳤다. 명동 등을 점검하는 중구에서 3건, 강남역 등을 단속하는 강남구에서 2건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단속만으로는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근정 녹색연합 국장은 "강력한 제재수단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며 "상가에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냉방기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판, 실내조명 등 여러 가지다. 일시적인 단속보다는 에너지 소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다양한 소비 억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관계자는 "영세상인이 많다보니 과태료 건수를 많이 올리기보다 경고장을 발부해 상인들이 시정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며 "에너지 절약을 하는데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