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최저임금 결정에 시스템 개편 목소리 커져
공익위원 향한 구애에 올인…퇴장·파행 사태 연례행사
지난 12일 새벽 내년도 최저임금이 우여곡절 끝에 8590원(2.87 % 인상)으로 결정됐지만 심의 과정을 보면 올해도 노사의 극심한 대립과 회의 파행 사태가 연례행사처럼 반복됐다.
그 과정에서 노사 양측의 좁히기 힘든 제시안과 끝없는 기싸움, 사실상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익위원 편향성 시비, 현행법상 결정기준의 무력화 등 최저임금위원회의 독립성·중립성·전문성 문제가 또 다시 심각하게 드러났다.
이제는 최저임금 결정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공익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노사 양측의 의견차가 생기기 때문에 사실상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결정의 키를 쥐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공익 위원 전원이 최종 표결에 참여했다.
사용자 안(8590원)과 노동자 안(8880원)이 표결에 부쳐져 15표를 얻은 사용자 안이 11표를 얻은 노동자 안을 이겼다. 나머지 1표는 기권처리됐다.
노사는 각자 자신들이 낸 안에 투표했다고 가정하면 남은 공익위원 표는 8표다. 6명은 사용자 안에 2명은 노동자 안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시사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도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위촉한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결정을 좌지우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5월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 얽매여 무조건 그 속도대로 인상돼야 하는 건 아니라며 처음으로 속도조절을 시사했고, 이어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수준이 최소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결정 직전까지 정부 부처 장관들과 더불어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잇따라 속도조절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해 5월 말 박준식 위원장 등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8명이 새로 위촉됐을 즈음엔 청와대에서 3% 안팎 인상설이 흘러나왔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런 상황에 부합하는 2.87%로 결정됐다.
올해 심의 과정에서는 경영계와 노동계가 번갈아가며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정상적으로 심의를 한 기간보다 파행한 기간이 더 많았다.
노사가 정상적으로 테이블에 앉아 협상을 진행한 기간은 불과 2~3일에 지나지 않았다.
잇따른 파행으로 제대로 된 심의를 진행하지 못하다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해치운 셈이다.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에 의해 결판이 나는 만큼 노사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논리 싸움이 아니라 어떻게든 공익위원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여론전과 떼쓰기 싸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올해도 힘의 논리에 의해 최저임금이 결정되면서 최저임금법상 명시된 결정기준도 무력화 됐다.
법에는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근로자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도록 기준을 두고 있지만 이번 인상률 2.87%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파행을 부르는 교섭 구조보다는 객관성·전문성을 높여 심의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정권에 따라 최저임금이 오락가락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