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위, 재계 입김 거세진다

2012-04-23     김훈기 기자

 정운찬 위원장 사퇴 이후 4주 가까이 공석인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에 재계 추천 인사 선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향후 동반성장위에서 대기업의 입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3일 재계 등에 따르면 신임 위원장 후보로 윤증현(사진 왼쪽) 전 기획재정부장관과 김종인(오른쪽)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인물 모두 차이는 있지만 대기업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중요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전임인 정운찬 위원장이 국무총리 출신이기 때문에 이에 준하는 인사가 돼야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동반성장위는 신임 위원장이 대기업에도 설득력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윤증현 전 장관의 경우 일부에서 '재벌개혁론자'로 언급되고 있지만 누구보다 대기업의 이득에 관여했던 인물이다. 2004~07년 당시 금감위원장 시절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문제, 삼성생명 및 삼성카드의 금산법 제24조 위반 문제, 생보사 상장 논란, 금산분리 완화 논란 등등 노골적으로 삼성에 편향된 자세를 보였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시장주의자가 아니라 다수의 희생 하에 소수의 기득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중상주의자, 그것도 '한다면 하는' 브레이크 없는 중상주의자"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의 경우 윤 전 장관과 다른 평가가 나온다. 개혁성향에 소신파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정통 관료와 달리 유학(독일 뮌스터대학)→대학교수(서강대 경제학과)→국회의원→장관(과거 보사부)→청와대 수석(김대중 정부)→새누리당 비대위원을 거치면서 소신 있는 발언으로 거침없는 행동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일했던 인사들은 "재벌들에 밀리지도 손을 벌리지도 않은 드문 인물이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지난달 말 새누리당에서 나올 때도 "당을 쇄신하겠다. 국민을 바라보겠다는 말을 믿고 (비대위에)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와서 (박 위원장과) 얘기를 해보니까 박 위원장의 쇄신에 대한 강도는 굉장히 약했다"고 바른 말을 하고 떠났다.

그가 이처럼 날선 발언이나 직언에 거침없는 것은 독일 유학 경험도 있지만 대한민국 첫 대법원장이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였다는 사실도 한 몫 한 것으로 주위에서는 보고 있다. 하지만 DJ정부 청와대 수석 시절 동화은행 뇌물수수 사건으로 구속된 경험이 있다.

◇손 놓은 정부‥동반성장 '퇴색'

재벌에 대해 긍정적인 인사들이 거론되는 상황이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인 대·중소기업 상생과 동반성장에 대한 고민은 없어보인다.

특히 이들 문제에 대해 경제계의 공통 의견을 수렴해 중재를 해야 하는 자리에 재계 추천 인사가 선임될 경우 형평성 논란 등 또 다른 잡음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 전 위원장이 전경련 해체 등 대기업을 향해 날선 비판을 하고 물러난 터라 재계를 두둔하는 인물이 선임될 경우 중기중앙회를 비롯한 중소기업계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 속에서도 정부는 재계 추천 인사를 선임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하고 있다. 사실상 손을 놓은 것이다.

지난 16일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달 말까지 동반성장위원장이 선임될 것이다. 경제단체들이 모여서 추대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대통령이 가진 임명권을 재계에 일임한 발언이어서 아직까지도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정 전 위원장이 사퇴한 이후 마땅한 후임자를 물색하기 어려웠던 정부가 재계의 입김에 넘어간 셈이다.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사실상 동반성장위가 MB정부 말기 동력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누구를 앉히더라도 대선 정국 등에 떠밀려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같은 인식은 동반성장위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재계를 설득해 정권 말기 MB정부의 중요 정책 과제인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작업을 무난히 마무리할 적임자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비상근 명예직인 동반성장위원장이 대·중소기업 상생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직접 나서서 다뤄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인물이 선임돼도 가시밭길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환경 등이 다른 대·중소기업 양측을 원만하게 조율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역시 지난 5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대·중소기업계 대표 또는 중소기업중앙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추천하는 인사가 공동으로 이끌어 가는 공동위원장 체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대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인사가 와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한편 동반성장위원회는 위원장 선정과 관계없이 다음 주 30일께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 등에 따르면 이르면 이번 주 중 신임 위원장의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결국 30일 동반성장지수 발표 자리가 신임 위원장의 첫 번째 공식행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