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14년만에 판례 바뀔까
대법원 전원합의체 30일 양심적 병역거부 선고
양심・종교적 이유‚ 병역기피 사유 인정 여부 쟁점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입영을 기피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죄가 되는지를 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시 판단하면서 14년 만에 판례가 변경될지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법원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유죄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럼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과 국방의 의무를 거부한 이들에 대한 사법조치라는 주장이 꾸준히 대립하는 문제였다.
28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전합은 오는 30일 오후 2시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모(34)씨의 상고심을 선고한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개인의 신념 등 양심이나 종교적 이유가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인지 여부다.
현행 병역법 88조1항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국내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려왔고, 주로 병역법 시행령상 병역 면제가 될 수 있는 최소 실형인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해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 선고는 지난 1968년 7월 확립된 판례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이후 30여년이 지난 2004년 7월 대법원 전합이 다시 이 문제를 들여다봤으나 기존 판례를 인정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 전합은 “병역법 88조1항은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라며 “병역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국가의 안전보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양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이라며 종교나 개인적 신념이 병역을 기피하는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봤다.
헌법재판소 역시 병역거부의 사유로 ‘양심’을 제시했을 때 병역법을 통해 처벌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왔다.
헌재는 대법원 전합이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로 판단한 이후 같은 해 8월과 2011년 8월에 이뤄진 병역법 88조1항에 대한 두 차례 심리에서 모두 합헌 결정을 했다.
지난 6월28일에도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 제도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지만, 처벌 조항에 대해서는 합헌이라고 제시했다.
이처럼 법원과 헌재 모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정당하다고 봐왔던 만큼, 이번에도 판례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14년의 시간 동안 국내외 사회환경이 변하면서 이를 반영한 새 판례를 기대하는 시선도 상당하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헌재 판단 이후 대체복무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인권에 대한 사회적 환기가 이뤄지는 등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결론이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다.
대법원이 지난 2004년 이후 대법관 4명이 참여하는 소부에서 처리해왔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다시 전합에 회부했다는 것도 판례의 변경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2004년 5월 서울남부지법을 시작으로 1심과 2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무죄 선고가 잇따르는 등 법원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변화했다는 평가다.
아울러 헌재 결정 직후인 지난 7월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법정 구속된 피고인의 보석이 대법원에서 직권으로 허가되기도 했다.
이번에 대법원이 기존과 다른 판단을 내놓을 경우 현재 진행 중인 판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상고심이 200건을 넘은 상태다. 또 여호와의 증인은 신자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재판 건수를 8월말 기준 1심 423건, 항소심 304건, 상고심 206건 등으로 집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유죄가 확정됐거나 수형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경우 재심이나 보상 등의 구제를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 대법원이 이번에 새로운 판단을 내놓는다고 해도 이미 확정된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에서 특별사면을 고려하는 등의 방식으로 구제받게 될 여지는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미 형사처벌을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구제하지 않으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특별사면을 청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