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조각가 송진화, 여성심리 대변 '열꽃'

2012-03-20     유상우 기자

 "음…, 카타르시스랄까. 가슴에 칼을 꽂아 놓은 작품을 보면 시원하다"고 한다. 자신의 짧은 머리는 "발광이 나서 깎았는데 12년 정도 되니까 기르기 싫어졌다"고 한다.

나무 조각가 송진화(50)는 나무에 기쁨, 슬픔, 분노 등 그때그때 느끼는 여성의 심리적인 상황을 새겨 넣는다. 대부분 눈이 퉁퉁 부어있는 까까머리 인체 조각들은 춤을 추거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앙상한 나뭇가지 아래에 매달려 있다.

작품은 자화상이다. "내 이야기를 한 거니까…. 일기 같은 거? 그때그때 감정을 담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형상은 "나무가 얘기해 주는대로 깎는다. 내가 똑똑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얘기는 모르고 내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렇게 나오더라"며 웃는다.

전공은 동양화다. 스티로폼에 한지를 붙이는 한지부조 작업을 했지만 의미를 못 느껴 그만뒀다. 작업에 대한 의문으로 환장할 즈음 인사동 목인박물관에서 본 목각인형에 매료돼 나무를 깎아봤다. 꼬질꼬질한 각목 하나를 주워 우물 딱 주물 딱 깎았는데 아주 예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무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작품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홀로서기 여성의 심리적인 상황을 담은 탓인지 위태위태한 삶을 연상케 한다. 행복하고 절망해야만 한 삶의 순간을 내밀한 표정과 몸짓으로 깎아낸다. 즉발적인 작업이다.



나무는 이곳저곳에서 주워온다. 어린이 놀이터 늑목이거나 누군가의 집 자개 장농 문짝 등 자신의 몫을 다한 나무들이다. 충청도 개심사 해우소에서 가져온 것도 있다.

폐목이지만 작가에게는 보석과도 같다. "나무가 숨을 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살아온 시간과 흔적을 지닌 폐기처분된 나무는 송씨의 손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대부분 웃고 있는 얼굴의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내가 웃는 게 아닌 느낌, 그래도 살아야지 하는 그런 느낌? 울분에 터진 여자들 얘기일 수도 있고…."

작품에 등장하는 강아지가 흥미롭다. 여성의 어깨에 앉거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는 모습이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강아지는 작은 위로의 존재로 출발했으나 어느 때는 애인이 됐다가 애물단지도 됐다가 예술도 됐다가, 같이 가야하는 어떤 존재로 보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하루 작업시간은 15~16시간이다. "손은 항상 근질근질하다. 팔이 몸에 붙어 있지만 자기가 일을 하고 싶은지 알아서 움직일 정도"라고 너스레를 떤다. 작업실은 서울 상계동 아파트 관리실이다. 5~6평 규모로 열악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 약간의 불안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댄다. 작업장을 애인으로 표현한다. "처음 작업실 얻고 나서 사랑에 푹 빠졌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 크고 작은 나무 조각작품 55점을 곳곳에 설치했다. 전시 제목은 '열꽃'이다. "속에서의 이상 징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진행형의 현상이다. 내 작업행태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첫 전시를 시작한 지 10년이 돼 기수의 의미도 슬쩍 얹어 봤다." 전시는 4월1일까지다. 02-72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