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일주일, 대·중소기업 희비 교차
적용 대상 광주 98·전남 36곳…지난 1일부터 130곳 전면 시행
대기업 1년전부터 대비 여유 만만 VS 영세·특수사업장 고전
개정 근로 기준법에 따라 '주 52시간 근무제'가 상용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된 지 1주일 만인 8일 광주·전남지역은 주요 사업장 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정부가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정착시켜 국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정책을 도입했지만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환경과 직장문화에 대변화를 가져다 줄 근로시간 단축은 최장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함에 따라 업무 효율 증가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사업장이 있는 반면 벌써부터 인건비 증가 등을 이유로 부작용이 발생하는 사업장도 나오고 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고 있는 광주·전남지역 300인 이상 사업장과 국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은 총 130여 곳으로 확인됐다.
6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될 300인 이상 사업장은 광주 98개사, 전남 36개사 등 총 134개사로 나타난 가운데 대기업 사업장은 비교적 제도 시행이 순항하고 있다.
◇대기업 사업장 1년 전부터 유연근무제 도입 '근로자 만족도 높아'
광주의 대표적인 대기업 사업장인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 생산공장의 경우, 근무시간 단축제도 도입에 앞서 지난해부터 '유연 근무제'를 앞당겨 적용하면서 큰 혼란 없이 '주 52시간 근무제'가 연착륙하고 있는 모양새다.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은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시험 도입해 예행연습을 실시해왔다. 지난 1일부터는 주 단위 '자율 출퇴근제'를 월 단위로 확대한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직원에게 근무시간 재량권을 부여하는 '재량근로제'등 다양한 근무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근무 시스템 도입으로 삼성전자 직원들은 월평균 주 40시간 이내(주 단위 최소 20시간 근무)에서 출·퇴근과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고 있다.
특히 지역 사업장에서는 최초로 사원증 확인 시스템 도입을 통해 출·퇴근시간을 매일 체크하고, 주 단위 평균 근무시간을 초과할 우려가 있을 때는 자동으로 미리 안내해 주고 있다.
기아차 광주공장도 생산직의 경우 지난해부터 주간 연속 2교대 근무제(1·2조 각각 8시간)인 '주 40시간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야간 연장근무를 하고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좋지만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또는 개인적으로 오후 시간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더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아차 주요 협력사들도 원청인 기아차 생산라인 근무 패턴에 맞춰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해 나가면서 근무시간 단축 제도가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자연스럽게 연착륙하고 있다.
사무직 근로자들도 지난 5월부터 시범 운영 중인 '유연 근무제'를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집중근무 시간으로 운영하고 나머지 시간은 퇴근하거나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있다는 반응이다.
금호타이어도 지난달부터 주 52시간 근무 관련 매뉴얼과 실시간 근태관리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지난 1일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생산직의 경우 4조 3교대 8시간 근무 체제를 전환했다.
사무직은 주 5일 8시간 근무 체제로 운영 중이다. 생산·사무직 근로자들이 초과 근무를 못하도록 매뉴얼 교육도 강화하고 있으며, 주 52시간 초과 우려가 있는 직원에 대한 '자동 알람' 시스템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백화점·대형마트 등 지역 대형 유통업계 '근로시간 단축' 변화 바람
지역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는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제도 전면 도입까지는 1년 유예기간이 남아있지만 어차피 도입할 제도라는 인식 때문에 벌써부터 영업시간 단축을 위한 예행연습이 한창이다.
광주신세계는 지난 1월부터 '임금 하락 없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최초로 '9-to-5제'를 적용해 협력업체를 제외한 그룹 소속 직원들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고 있다. 정시 출·퇴근을 위해 오전 9시30분 이전에는 강제로 PC 사용을 막고 오후 5시30분에 'PC 셧다운제'를 실시하고 있다.
광주신세계는 지난 2일부터 매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오픈 시간을 기존 오전 10시30분에서 11시30분으로 1시간 가량 늦췄다. 이는 업장 특성상 매출이 몰리는 오후 근무 시간은 유지하는 대신 오전 근무 시간을 줄임으로써 전체적인 근로시간을 줄이는 효과를 보고 있다.
자정까지 영업하던 지역 대형마트도 이미 '오후 11시 폐점'이 시행되고 있다. 가장 먼저 이마트가 지난 3월부터 전체 점포 폐점시간을 오후 11시까지 일괄적으로 단축했다. 홈플러스 순천 풍덕점의 경우는 지난 4월부터는 자정에서 오후 11시로 폐점 시간을 1시간 앞당겼고, 롯데마트도 6월부터 폐점시간을 오후 11시로 1시간 단축했다.
◇지역 석유화학 플랜트 업계 울상 '대책마련 호소'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이후 전남지역 주력 업종인 석유화학 플랜트 업계는 인력과 비용 부담 증가 등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배관 공사를 수주한 여수산단의 A사는 내년 말까지 공사를 완료하는 가운데 정해진 공기를 맞추려면 인력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지만 '숙련공'을 찾기가 쉽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어렵게 전문 인력을 구해서 추가로 투입하면 이번에는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늘어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A사는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공사비가 상승할 경우 경쟁력 저하로 결국 공사를 수주할 수 없게 되고 시장에서 도태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업체들은 정부에 석유화학 플랜트 사업장의 경우 특수성을 감안해 근로시간 산정 기준을 주 52시간에서 '16일 단위로 변경 적용'하는 예외 조항을 마련해줄 것과 유해독성물질 발생 피해 등 특수 상황 발생시, 해당 근로시간을 적용대상에서 제외시켜 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여수산단의 경우 대기업 하청업체들의 걱정도 날로 커지고 있다. '개정된 주 52시간'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면서 작업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근로자를 추가로 고용해야하기 때문이다. 인건비 추가 지출도 경영에 큰 부담이 되지만 현장에 적합한 인력을 고용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이 따라 애를 태우고 있다.
◇영세버스 업체 근무시간 줄이자 피해는 승객들에게
최근 여수·순천·광양·목포 등 전남지역 4개 시내버스 노조가 기본급 10% 인상을 요구하며 임금협상을 벌이다가 파업결의 후 실행 직전에서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들 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직접적인 계기는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발단이 됐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버스업종은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주당 근로시간이 68시간으로 제한되고 오는 2019년 7월1일부터는 52시간으로 줄어들게 된다.
노조는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초과 근무수당을 받을 수 없어 실질 임금이 삭감된다는 이유로 반발했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할 경우 현행 급여체계로 산출할 경우 한 달에 100만원 정도 급여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버스 회사 측도 어려운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대폭 오른 최저 임금을 맞추기도 어려운 형편에 근무시간까지 줄이면 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운전원을 신규로 추가 고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당시 임금협상은 가까스로 타결됐지만 개정된 주 52시간 법정 근로시간 준수를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하고, 현행 배차 간격 수준으로 버스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전남지역 시내버스 업계가 운전원 1037명을 추가로 채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중 목포시의 경우 운전원을 40명 더 추가 고용해야 하지만 시내버스 회사 측의 경영상 어려움으로 당장 운전원을 충원할 수 없어 '버스 운행 감축'을 선택했다.
노선별로 차이는 있지만 30분 간격으로 운행했던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상황이 발생돼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목포지역 시내버스 감축 운행은 운전원 신규채용이 완료되기까지 최장 15개월 간 지속될 전망이다.
◇화이트칼라 근무 밀집지역 나주혁신도시 요식업체 매출 급감 '긴 한숨'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직장인들이 대거 근무하는 오피스 밀집지역 요식업체 상인들은 급격한 매출 급감으로 긴 한숨을 쉬고 있다.
나주혁신도시에서 음료 판매점을 운영하는 A씨는 "식·음료 판매 업종 자영업자들에게 '주 52시간 근무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만큼이나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번 주 점심시간 매출부터 눈에 띄게 줄었고, 오후와 저녁시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금요일 오후이면 서울로 올라가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생활 패턴상 금요일보다는 목요일 회식이 많다는 의미에서 '불목'으로 지칭되는 목요일 오후에도 인근 술집과 고깃집이 조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혁신도시 공공기관 대부분이 사내에 카페와 구내식당을 갖추고 있는 가운데 유연근무제 도입 이후 일부 공공기관의 경우는 짧아진 점심시간 때문에 외부 카페를 편하게 이용할 수 없고, 심지어 오후 10시 이후에는 법인카드 사용을 자제시키는 바람에 회식도 눈에 띄게 줄어 들고 있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시행과 관련, 지역 한 경제계 관계자는 "여유가 있는 대기업은 제도가 빠르게 정착할 것으로 보이지만 특수업종과 중소기업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많은 부담을 안고 점점 더 고용을 늘려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경영난을 호소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