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퍼블릭, ·남북정상회담 날 공연··· "천년간 평화의 시작이길"
"굉장한 일인 것이 아침에 일어나서 CNN을 켰을 때 오늘 남북한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보게 됐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제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셨습니다. 한국은 그 분이 가보셨던 유일한 외국이었습니다. 비무장지대(DMZ)를 지키셨습니다."
심지어 밴드명도 상징을 담은 듯 '하나의 공화국'이다. 미국의 감성 록 밴드 '원리퍼블릭(ONE REPUBLIC)'이 남북이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첫 내한공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7 - 원리퍼블릭(ONE REPUBLIC)'을 펼쳤다.
보컬리스트 라이언 테더는 공연 도중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축하하며 "오늘, 이런 날 여기에서 이 밤에 공연한다는 것이···. 오늘 이 밤은 우리 밴드에게도 가장 멋진 공연을 한 날"이라고 기뻐했다. "행운을 빌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오늘이 앞으로 100년 1000년간 평화의 시작이길"이라고 목소리 높여 외쳤다.
데뷔 11년 만에 첫 내한한 원리퍼블릭은 내한 전에 테더의 팔에 새겨진 일본 전범기 문신으로 구설에 올랐다. 테더가 이 문신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국 팬들의 항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날 공연은 이전 시비를 겸연쩍게 만들 만큼 탄탄했다. 무대 매너 그리고 열정은 물론 공연 구성과 라이브 실력이 최고 수준이었다.
테더는 자신이 말할 때마다 크게 호응하는 한국 팬들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며 "새 앨범이 내년에 나오기 전까지 마지막 아시아 투어입니다만 내년에 새 앨범이 나오면 당연히 돌아오겠다"고 단숨에 약속했다. 이날 4500여석은 티켓 오픈 즉시 순식간에 매진됐었다.
3박자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콘서트였다. 빛처럼 부서지는 사운드, 노래처럼 흐르는 조명, 미국 팝밴드 '마룬5'의 보컬 애덤 리바인의 간드러진 감미로움에 솔풀한 결을 더한 듯한 테더의 보컬이 똘똘 뭉쳤다.
'스톱 앤드 스테어(Stop And Stare)'의 웅웅거리는 베이스, 상승하는 기타 그리고 보컬이 지긋이 눌러주면서 들어오는 순간은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줬다. 초반부 브렌트 커즐의 애절한 첼로 소리가 고막을 비집고 들어와 심장을 쥐어 뜯는 '시크릿'을 떼창할 때 콘서트장은 아찔했다.
한국 배경에 한국계 배우와 한국어가 등장하는 뮤직비디오로 주목 받은 '웨어에버 아이 고(Wherever I Go)'는 뮤직비디오 없이 틈 없는 사운드와 흥 넘치는 조명으로 영상을 보는 것 이상의 시각적 황홀함을 안겼다.
테더는 커버곡도 본인만의 스타일로 해석했다. 자신이 작곡한 노래이기도 한 비욘세의 '할로'를 직접 키보드를 치며 들려줬는데 원곡의 웅장한 드라마틱함과는 다른 담백함이 배어 있었다. 팬들은 스마트폰 플래시로 파란빛 바다를 만들었다. 이달 돌연 세상을 떠난 DJ 아비치의 '웨이크 미 업'을 부르며 고인을 추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원리퍼블릭 공연은 도약과 비행, 착륙이 일사불란했다. 공연 막판 플로어석으로 내려온 테더는 팬들 틈에 거리낌 없이 섞여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들의 스마트폰을 자신의 손에 쥐고 영상을 마음껏 찍은 뒤 돌려줬다.
단지 콘서트가 가수와 연주자, 악기 그리고 무대만으로 성립이 안 되며, 관객이 필요충분조건임을 충분히 인지한다는 듯이 객석과 분위기에 몸을 떠맡겼다.
대표곡 '어팔러자이즈(Apologize)'를 모두가 합창하는 순간, 공연장 곳곳을 밝히던 스마트폰 불빛이 별처럼 쏟아졌다. 이것이 또 다른 평화였다.
최근 으뜸으로 꼽히는 내한공연은 이달 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 팬들과 처음 만난 케이티 페리 무대인데, 이날은 거대한 그녀의 공연과 다른 결의 정취가 있었다. 페리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지난 내한 당시 방문했던 DMZ 사진 등을 게재했다. 음악과 뮤지션은 국경, 언어, 인종에 상관없이 마음을 꿰뚫는 힘이 있다. 원리퍼블릭은 의미 있는 날, 저만의 방식으로 이름값에 걸맞은 '축하 공연'(!?)을 하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