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에 '울화병'...이민까지 생각해
"이런 환경에 아이 키우기도 겁나"
"차량 2부제 효과? 보여주기식 행정"
지난 주말부터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27일도 출근길 시민들의 마스크 행렬이 이어졌다.
지하철 객차 안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눈만 내놓은 시민들이 목이 칼칼한 듯 기침을 하거나 건조한 눈을 위해 인공눈물을 눈에 넣기도 했다. 지하철 출입문 창에는 희뿌연 먼지가 앉아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처 마스크를 챙기지 못한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도 있었다. 서울 지하철 2·4호선 사당역 근처 한 편의점에서는 "마스크가 다 팔렸다"는 말을 듣고 난감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시민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따뜻한 봄을 기다리던 시민들은 미세먼지의 습격에 피로가 쌓인 듯 "정부의 대책이 있기는 한 거냐"며 비판하거나 "이민 생각을 한다"고 토로했다.
손모(30·여)씨는 "이젠 얼굴 뿐 아니라 몸까지 가렵다. 깨끗한 공기의 소중함을 이제 알겠다"며 "서비스직이라 화장이 필수인데 마스크를 꼈다 벗었다 할 때마다 수정 화장을 해야 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손씨는 "건강도 안 좋아지고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계속 집에만 있다보니 우울하기도 하다"며 "어제 자기 전에 뉴질랜드 이민 관련 블로그를 찾아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회사원 김모(32·여)씨는 "내가 유난히 약한지는 모르겠지만 눈과 코, 목이 다 붓고 열이 난다"며 "지금 같아서는 정말 이민을 생각하는 게 유난스럽지 않을 정도다. 실질적인 피해를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언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미세먼지가 5월까지 계속될 수도 있다는 예보에 시민들의 쇼핑 목록에는 '마스크'가 추가됐다. 겨울철 감기용 면 마스크를 쓰는 시민들도 여전히 있었지만 미세먼지를 확실하게 막아줄 보건용 마스크를 고른 시민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대학생 한모(25)씨는 "오늘처럼 수업이 있는 날이 아니면 잘 나가지도 않는다"며 "안경을 써서 마스크를 끼면 김이 서리는데 이 때문에 마스크를 매우 신중하게 골랐다. 통풍이 잘 되면서도 미세먼지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는 마스크를 구하느라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정부의 미흡한 대책을 지적하는 시민들도 상당수 있었다.
박모(36)씨는 "나부터도 미세먼지가 심하면 차를 가지고 출근할까 고민이 되는데 차량 2부제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먼지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라는 말인데 보여주기식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직장인 김모(33·여)씨는 아예 연차를 쓴 케이스다. 김씨는 "어제 미처 마스크를 준비하지 않고 밖에 나갔더니 미세먼지 공격을 당했다. 밤부터 계속 기침이 나더니 아침에는 목소리까지 잠겼다"며 "4살난 아들도 어제 어린이집에 갔다 오더니 미열이 올라 오늘은 집에서 데리고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렇다 할 정부 대책도 없어서 답답하다"며 "목은 마스크를 쓴다지만 눈으로 들어오는 미세먼지는 어쩔 것이며 아이들의 호흡기는 어른들보다 더 약한데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기르려니 막막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강남으로 출근하는 직장인 권모(36)씨는 "난 집과 직장이 가까운 편이라 마스크를 안 썼지만 경기도에서 서울로 오는 동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한다"면서 "경기도는 마스크를 버스정류장에 배치해 무료로 보급한다는데 그런 곳에 세금을 썼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날 수도권에는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비상저감조치는 미세먼지 농도가 당일 16시간(0시~오후 4시) 기준 '나쁨(50㎍/㎥) 이상'을 기록하고 다음날 미세먼지 농도도 '나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될 때 발령된다.
이날 오전 9시 기준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 102㎍/㎥, 경기 111㎍/㎥, 인천 106㎍/㎥, 대구 91㎍/㎥, 전북·세종 88㎍/㎥, 경남 87㎍/㎥, 부산 86㎍/㎥ 등을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