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선 안된다니 2금융 찾지요"
서울에 사는 김민석(33)씨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한다. 2년 전 중고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캐피탈에서 연 25% 금리로 900만원을 대출받았다. 지난해에는 집주인이 전셋값을 1000만원 올려달라고 요구해 은행에 갔지만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듣고왔다.
김 씨는 "은행 금리가 싸다는 것은 알지만 신용등급이 떨어져 더 이상 이용할 수가 없었다"며 "결국 저축은행에서 20%대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대학 때 대출받았던 학자금 원금을 갚기 시작한 상태.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돈줄은 더 바짝 말라가고 있다.
"금리가 높은 대출부터 갚고 있지만 이자만 내다보니 원금이 좀처럼 줄지 않습니다. 올해는 결혼 계획도 있는데 대출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아무리 계산해도 빚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 두 명 중에 한 명은 가계빚이 있다지만 2금융권 대출자들의 사정은 겉보기보다 훨씬 심각하다.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부담하지만 빚갚을 여력은 시중은행 이용자들보다 크게 떨어진다. 이들이 2금융권에서 빌리는 돈은 대부분 생활 자금을 위한 '생계형 대출'이란 점에서 더 아슬아슬하다. 경기가 악화될 경우 가장 먼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고금리 덫' 감춘 2금융의 유혹?
"최저 7.7%부터 최대 6000만원까지 5년간 내 돈처럼" (A저축은행 신용대출)
"직장이 없어도 OK? 최저 6.5%에서 2000만원까지 대출" (B대부업체 무직자 대출)
"초저금리, 당일 7000만원 가능, 30분 내 입금" (C캐피탈)
시중은행의 문턱은 높고, 2금융권이나 사금융의 저금리 마케팅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2금융권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달콤한 유혹이다. 현재 대부업체 최고금리 상한은 39%이지만 광고에서는 연 6~7%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출상담을 시작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박진성씨(42)는 "광고에선 8~19%대 금리를 준다고 해서 상담을 받았는데 사실과 달랐다"며 "은행권에서 대출이 안 될 정도면 이미 신용도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최고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최근에는 제도권 금융회사를 사칭하면서 불법으로 광고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골치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1월부터 두 달간 인터넷에서 금융회사의 대출모집인을 사칭한 혐의가 있는 52개 업체를 적발했다. 또 제도권 금융회사 대출상품을 불법 광고한 혐의가 있는 28개 대부중개업자를 적발했다.
◇2금융권 가계대출도 임계치 보인다
2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보험 등 2금융권의 가계대출은 402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9.9% 증가했다. 지난해 은행권 가계대출은 증가폭은 5.7%였다. 2004년 193조8000억원에서 7년 만에 두 배나 늘면서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속도(1.65배)를 뛰어 넘었다.
상호금융과 보험권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는 더 아찔하다.
상호금융의 가계대출은 지난해 13.1% 증가한 175조원이었다. 연 평균 16.1%씩 증가하면서 불과 9년 사이에 4배 가까운 규모로 성장한 셈이다. 보험사 가계대출 역시 2010년 3%에서 지난해 9.3%로 급증했고, 저축은행은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24.9% 증가세를 기록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발표한 후 은행 쪽에 규제가 쏠리면서 2금융권으로 가계대출이 전이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며 "1금융권 내에서도 대출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저금리로 1금융권과 대출 금리 차이가 줄어든 측면도 2금융권 가계대출 증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실제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지난해 상반기11조6000억원에서 하반기 12조8000억원으로 증가세가 둔화됐다. 반면 2금융권은 정부 규제 이후 15조7000억원에서 20조5000억원으로 증가세가 확대됐다.
◇1금융 막고, 2금융 좁히면 "결국은 사금융"
2금융권 대출 증가를 우려하는 이유는 고금리구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은행빚이 불어나는 속도를 감당하기 힘들다. 주고객층이 신용등급 5~8등급에 집중돼 있는 만큼 시중은행 고객층인 1~4등급보다 상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2금융권 이곳저곳에서 빚을 지고 있는 다중 채무자 문제는 해법이 쉽지 않다.
개인신용펑가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을 기준으로 신용등급별로 다중채무자 비중은 1~4등급이 5% 이하인 반면 5등급 15%, 6등급 20%, 7등급에는 30%가 몰려 있다. 사실상 신용등급 5~7등급은 65%에 달한다.
김윤경 코리아크레딧뷰로 전문연구원은 "2금융권 대출 중에 이미 많이 대출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돌려막기를 위해 다른 채무를 쓰는 것은 언젠가 폭발할 폭탄을 쥐어주는 것"이라며 "저신용자를 막기보다는 부채를 이미 가지고 있어서 가처분 소득 대비 상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금융권 가계대출이 곪아터질지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경기를 꼽고있다. 가계부채가 900조원으로 임계점에 달한 상황에서 경기 둔화 혹은 부동산 시장의 붕괴가 현실화될 경우 2금융권 대출자들이 가장 먼저 부채의 습격을 당할 수 있다.
전 연구원은 "지난해보다 올해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2금융권 대출이 계속 증가할 경우 부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상적인 대출 수요가 아니라 기존 대출의 상환이나 악성 대출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대출 수요가 줄어드는 게 맞다"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은 최근 2금융권 가계 부채 억제를 위한 대책을 내놓고 '관리 모드'에 돌입했다. 상호금융에 대해서는 예대율 관리와 비조합원 대출 한도 축소 등을 통해 건전화를 유도하고, 보험사는 가계대출 건전성 규제를 은행 수준으로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벌써부터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1금융권에 이어 2금융권 창구도 좁아지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살인적인 초고금리의 사금융으로 내몰 수 있다고 우려한다.